인간 존재를 되돌아보다. – 국제경쟁2
국제경쟁 2 섹션은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내모는 어린 운동선수를 보여주는 <Breathe 호흡>, 가장 개인적인 공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경제적 빈곤 상황을 그리는 <300 Per Night 하룻밤에 300>, 팬데믹 상황 속 인간의 외로움을 담은 <Lovebirds 러브버즈>, 과거의 비극적 역사를 어떻게 교육하고 기억해야 할 것인지 질문하는 <Inspection 교육감>, 이기적인 인간 군상과 그로 인해 학대받는 동물의 이야기 <Circus in Town 서커스 인 타운>,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약해진 인간의 모습을 다룬 <August Sky 어거스트 스카이>. 이 영화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폴 빈센트 드 레스트라드 감독, <Breathe 호흡>
간절히 원하는 목표가 있을 때, 그 마음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유럽 육상 주니어 챔피언십 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공석이 생겼다. 열아홉의 육상선수 니나는 코치의 제안으로 국가대표팀 선발전에 출전할 기회를 얻는다. 그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밤낮없이 훈련에 매진한다.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호흡을 짧게 툭툭 내뱉는 그의 모습이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원래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던 동료선수 알리시아는 육상이 괴로워 자진해서 물러났다. 니나는 알리시아에게 포기한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는다고, 운동을 계속해야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니나 역시 선발전을 준비할수록 압박감에 시달린다. 친구의 권유로 조금 마신 술에도 죄책감을 느껴 토해낸 후 늦은 밤까지 훈련을 자행하고, 극심한 불안감으로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무리해서 운동한다. 보다 못한 코치가 쉬라며 그를 말리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발작 증세로 갑작스럽게 다리를 움직이지 못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육상 훈련을 위해 짧은 호흡만을 뱉던 니나는 심호흡으로 안정을 찾아본다. 그리고 기다리던 선발전 당일. 강력한 후보로 지명된 니나지만, 그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 출발선에 그대로 멈춰선 그의 뒷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강박적으로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던 그가 그저 놔버리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영화는 여운을 더 짙게 남긴다.
모쉔 나자피 메흐리 감독, <300 Per Night 하룻밤에 300>
이란의 한 마을. 차로 위에서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숙소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여행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팻말을 들고 크게 소리치며 더 빠르게 더 가까이 차에 달려든다. 위험천만해 보이는 상황이 그들에겐 일상이다. 성인 남성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 호객행위에 열성적이다. 그들 사이 호객행위를 하는 둥 마는 둥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 소년이 있다. 그는 가격을 물으며 관심을 보이는 관광객에게 “우리 건 비싸요”라며 손님을 맞을 맘이 없음을 내비친다. 자신을 지켜보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뒤늦게 열심히 하는 척해보지만, 아버지는 아이를 제치고 자신이 직접 나서 능숙하게 손님을 잡는다. 손님이 집으로 향하는 중에도 소년은 숙소 판매가 성사되지 않기를 바란다. 손님을 놓친 줄 알았을 때, 아버지가 타고 온 오토바이의 시동이 고장 나 손님을 안내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을 때 아이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진다. 그러나 결국 손님들이 집에 머물게 되고, 가족들은 집을 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실망한 소년은 두고 온 물건이 있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가 그 안을 살핀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것도, 가족사진을 보는 것도 싫지만, 아이가 실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오늘이 엄마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꾸며놓은 방을 바라보는 소년의 표정에는 속상함이 잔뜩 묻어있다.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마저 온전히 확보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그 상실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영화는 아이가 작을 가능성이라도 볼 수 있도록 희망을 선물해주며 결말을 짓는다.
빅터 모레노 감독, <Lovebirds 러브버즈>
러브버즈 호텔. 그 텅 빈 곳에 한 남성이 도착한다. 한 명뿐인 리셉션 직원과 소수의 투숙객만이 있는 보이고, 남성은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린다. 그 호텔은 어딘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곳에서 그는 비슷한 느낌의 한 남성과 묘한 관계가 형성되는 듯하다. 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호텔 관리 직원은 그의 방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는다. 리셉션 직원은 그에게 일행이 언제 오는지 계속해서 물어오고, 남성은 아직 모른다고 답할 뿐이다. 방 안에 홀로 앉아있던 그는 한 쌍의 새를 관찰한다. 늘 같이 있고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도 바로 죽어버리며 다른 세상에서 함께한다고 생각한다는 러브버즈다. 남성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언제 올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말이다. 기다리는 대상이 정말 있는 건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그저 남성은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있다. 인간의 치열한 외로움과 그에서 벗어나길 기대하는 마음이 담긴 영화는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을 반영하며 동시대성을 지닌다.
캐롤린 브라미, 프레데릭 바 감독, <Inspection 교육감>
프랑스의 한 고등학교 교실. 역사 교사와 교육감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다. 교사의 수업 내용과 방식에 대한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교육감이 교사를 찾은 것이다. 교사는 역사 수업 시간 한 달을 할애해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에 관해 가르쳤다. 강의 계획서에는 그 주제를 가르치는 데 최대 45분이 배정됐다. 홀로코스트를 깊이 있게 배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교사는 학생들이 정확히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므로 오랜 기간에 걸쳐 구체적인 자료를 활용해 유대인 대학살에 관해 가르치지만, 학부모들은 이에 불만을 제기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열심히 따라오지 않고, 교육감은 무슨 계획의 일환이냐고 묻는다. 교사는 결국 울분을 터뜨린다. 대화 도중 교육감은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오즈의 마법사> 포스터를 보고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열 번 이상 봤다고 하지만, 등장인물이 사자인지 곰인지조차 헷갈리는 그의 모습은 기억이 쉽게 휘발되는 혹은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게 해 씁쓸하다. 하나의 신, 두 사람의 대화 내용만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단순한 설정으로 홀로코스트에 관한 역사를 현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다.
로빈 파이스터, 세바스티안 켈러만 감독, <Circus in Town 서커스 인 타운>
서커스 공연장. 서커스 단장이 관객들에게 환상적인 쇼를 소개한다며 코끼리 메리에게 채찍을 휘두르면서 좁은 공간 위에 서도록 한다.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메리는 중심을 잃고, 앞에 있던 조련사가 코끼리 앞발에 깔려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서커스 코끼리 메리가 보조 사육사를 죽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한다. 그리고 서커스 단장이 메리를 시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장면이 이어진다. 고된 일에도 맑은 눈망울에 웃음을 잃지 않던 메리는 완성된 구조물에 의해 교수형에 처한다. 조련사가 목숨을 잃게 된 데 대한 처벌이다. 충격적인 이 애니메이션 영화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16년 미국 서커스단, 코끼리 메리가 조련사에게 지속해서 학대를 당하다 그를 숨지게 하는 일이 일어났고, 메리에 대한 거센 비난의 여론으로 메리의 교수형이 결정됐다. 인간의 유희를 목적으로 코끼리를 서커스의 도구로 이용하고, 입맛대로 다루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그도 모자라 교수형이라는 방법으로 코끼리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은 20세기 동물 학대의 전형으로 남았다. 여전히 동물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재, 되돌아봐야 할 과거다.
자스민 테누치 감독, <August Sky 어거스트 스카이>
7천 에이커가 넘는 아마존 숲이 불타오르고, 연기에 둘러싸인 마을. 화재가 시작된 지 14일이 넘어가지만, 계속해서 번지는 불길에 진압이 힘들다는 뉴스만 이어진다. 만삭의 임산부 루시아의 앞에 죽은 새 한 마리가 떨어진다.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고통에 시달린다. 그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데,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 그 말에도 루시아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부탁으로 신 오순절파 교회에 음식을 가져다주러 간 그는 한 여성의 연설을 듣고 그곳에 이끌린다. 계속되는 화재로 어지러운 세상, 연달아 목격한 새의 죽음, 임신한 몸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은 루시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는 하늘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며 불안감이 극심해지자 신 오순절파 교회에 찾아가 안정을 찾으려 한다. 기댈 곳이 없는 인간이 나약해지는 순간을 영화는 섬세하게 그려낸다.
국제경쟁 섹션은 총 8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국제경쟁 2’ 부문은 오는 10월 15일 금요일, 10월 16일 토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유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