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올드 앤 뉴: 국내감독전2 + 광화문 랑데부
![데일리_대표이미지_피칭 랑데부-05](http://gisff.kr/wp-content/uploads/2021/10/20211017_053941.jpg)
‘시네마 올드 앤 뉴’ 국내 감독전2에서는 총 3개의 작품이 상영됐다. 먼저 내달 신작 개봉을 앞둔 정가영 감독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2017)와 조은지 감독의 <2박 3일>(2017). 전자는 감독 본인이 직접 주인공으로 분해 조인성을 캐스팅하고자 하는 유쾌한 생활 밀착형 서사를 선보인다. 조은지 감독의 <2박 3일>은 남자친구 민규와의 2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은 지은이 겪은 짧은 사건들을 통해 이별의 의미를 곱씹는다.
로맨스에 호러를 곁들이고 여기에 포복절도형 대사로 영화관을 들썩이게 한 홍성윤 감독의 <그녀를 지우는 시간>(2020)도 빼놓을 수 없다. 오케이 컷 마다 등장하는 귀신을 지우기 위해 편집 기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감독의 이야기가 신선한 방식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영화 시작 전 조은지, 홍성윤 감독이 무대에 올라 짧은 인사를 건넸고 상영이 끝난 후 비대면 생중계로 ‘광화문 랑데부’가 이어졌다. 개인 일정으로 정가영 감독이 함께하진 못했지만 <2박 3일>의 두 주인공 정수지(지은 역), 송지혁(민규 역)이 깜짝 등장해 그 아쉬움을 달래줬다. 광화문 랑데부는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가 진행했다.
<2박 3일>의 두 배우 정수지, 송지혁 배우는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본 건데 감회가 어떤가?
수지 : 얼마 전 조은지 감독과 얘기 나누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를 통해 얻은 게 많음을 느낀다. 상영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지혁 : 오늘 그저 응원 차 현장을 찾은 건데 이 자리에 있게 될 줄 몰랐다. 즐기러 온 건데 지금 손에 땀이 너무 난다. 스스로 (작품을 찍을 때) 뭐가 부족했는지 알고 있으니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게 많더라. 특히 예전엔 다소 소극적으로 느껴졌던 지은이 예전보다 더 솔직한 캐릭터로 다가오기도 한다.
수지 : 처음에는 지은이 민규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도 의문이었다. 근데 (분석할수록) 말투나 존댓말 사용의 유무에 상관없이 그냥 지은은 매사에 다 진심인 인물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은지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지 : 영화를 통해 이별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솔직한 이별’이 원래 제목이기도 했고. 같은 마음으로 시작해 누군가는 이별을 말하고 또 누군가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놓이게 되지 않나. 그 점을 짚고 싶었다.
민규는 헤어짐을 말하는 게 미안하니까 오히려 더 툭툭거리는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나?
은지 : 지은과 이별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게 크니까 오히려 자기한테 되게 집중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민규는 민규식대로 자기감정에 솔직하다고나 할까?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편집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사건 사고를 다룬다. 주변 감독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성윤 : 관객들이 편집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를 것 같다는 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사실 편집실이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통받고 좌절하는 공간이다. 영화에 대해 가장 열띤 반응을 보내준 것도 작업, 편집하는 분들이었다. 위로받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웃음)
처음에는 편집실에서 혼날 수밖에 없는 감독을 풍자하는 것 같았는데 뒤로 갈수록 마치 ‘너만 편집실에서 혼나는 거 아니야’ 하며 어떤 위로를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윤 : 영화 속 얘기들은 다 직접 겪은 ‘실화’들이다. 이야기 속 주인공 감독이 특별히 바보고 고집 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편집실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렇게 변한다. 관객들이 보기에 감독이 이상하고 바보 같을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사람은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코로나19로 감독들이 직접 무대에서 질문을 받진 못했다. 대신 ‘오픈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채팅방에는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과 감독들을 향한 질문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의 후기로 한 관객은 ‘내일 편집실에 어떻게 가느냐’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홍성윤 감독은 단호하게 “그래도 가셔야 한다”고 반응했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2박 3일>의 마지막 지은이 민규를 향해 매를 드는 장면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과연 지은은 민규를 때렸을까?
은지 : 때리지 못하고 나오는 장면을 찍긴 했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결과를 보여주는 게 명확한 해결점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를 드는 순간만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지은의 감정을 잘 드러낼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지혁 : 감독님에게 동의한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한 대 맞는 게 속 시원 했을 수도 있지만 결말을 열어두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웃음)
영화의 또 다른 축은 민규의 가족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별(이혼)이다. 가족 이야기가 겹치도록 짠 이유가 있나?
은지 : 아까도 말했듯이 이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이별을 받아드려야 하는 사람과 이별을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결국 자신과의 싸움 끝에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민규네 가족(특히 아버지도)도 그런 상황이었을 거다. 또 할머니 같은 경우 은지와 같이 객식구이지 않나. 사위 집에 얹혀살고 있으니. 그 집에서 이별을 겪는 할머니의 감정도 잘 표현하고 싶었다.
할머니와 가족들은 이별 등의 사건이 계속되는 데도 밥은 꼭 먹는다.
은지 : 슬픈 얘기지만 할머니가 계속 밥을 차리고 밥을 먹고 가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그 행위를 통해서만 할머니가 이곳에 있어야 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걸 잘 드러내고자 했다.
<그녀를 지우는 방식>은 로맨스, 호러, 코믹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한다. 하지만 핵심은 로맨스다. 그 이유가 있다면?
성윤 :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호러 같은 경우 찍을 때는 힘이 들지만 상영했을 때 관객에게 바로 리액션이 나온다. 반면 로맨스는 내가 찍을 때 너무 좋다. 배우들을 가까이 하게 만들고 내가, 카메라가 거기에 들어가고. 그런 매력이 있다. 내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찐로맨스’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후반부 머리카락 씬에 대한 질문이 많다. 머리카락으로 주인공들의 목을 조이고 하는 장면 등에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은데.
성윤 : 무조건 현장에서 해결하자는 목표가 있었다. 8, 90년대 홍콩 영화 <동방불패> 같은 작품에서 나오는 느낌을 내고 싶었다. 머리카락을 미리 배우에게 감아두고 푼 다음에 거꾸로 되감았다. 쉽지 않은 방법인데 현장의 두 스태프가 너무 잘 도와줬다. 실제 크레딧에 ‘머리카락’으로 해서 이들의 이름을 넣었을 정도로.
여배우가 “선배”를 외치며 목 놓아 우는 장면들도 정말 재밌었다.
성윤 : 다양한 NG 컷을 만들어보자 하고는 배우들이랑 옹기종기 모여 굉장히 많은 버전을 찍었다. 극 중 후배 역의 수연 배우가 팔색조로 연기를 잘해서 특히 대성통곡하는 씬에 모든 사람이 다 쳐다봤다. 그때 건국대에서 찍었는데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볼 정도였다. (웃음)
귀신이 오케이 컷에만 붙어 있는 건 감독이 포기해야만 하는 고집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성윤 :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운 상징이다. 현장에서 찍을 때는 매우 자신 있을 수도 있다. 편집실에만 가면… 나는 이렇게 찍은 적이 없는데 하며 충격을 받는다. 그걸 귀신으로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2박 3일>을 보면 마지막 즈음 지은이 그런 말은 한다. “나도 이 이별에 대해 미안해하고 싶다.” 동시에 마음이 식는 게 아니면 누군가는 항상 미안한 쪽이 되어야 한다.
수지 : 정말 잘 쳐야 하는 대사였다. 당시에는 민규한테만 대입해 그 말을 했는데 지금은 실수를 저지를 사람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하는 쪽 마음이 제일 힘들긴 하겠지만.
은지 : 사실 내가 실제로 예전에 만났던 사람에게 헀던 말이다. ‘나도 미안해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웃음)
지은, 민규 말고도 민규의 부모님, 즉 엄머니 아버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도 극 중 중요한 요소다. 아버지가 비교적 빠르게 어머니와 이혼 도장을 찍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은지 : 아빠의 입장에서는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걸 어떻게 해”라고 말하는 순간 보내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느낀 거다. 그 장면들을 보고 있는 지은 역시 깨닫는 게 많았을 거고…
끝으로 모두에게 이 자리에 함께한 소감을 묻고 싶다.
수지 : <그녀를 지우는 시간>을 보며 이 영화는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나도 가끔 지칠 때가 있는데 그러지 말고 이 작품처럼 영화를 사랑하면서 작업해야겠다 다짐한다. 또한 은지 언니가 계속해서 연기하고 연출하는 걸 보고 힘을 많이 얻고 배우는 것도 많다.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도 좋았다.
지혁 : 설렘만 가지고 왔는데 이렇게 긴장할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으니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라.
은지 : 이 자리가 너무 떨려서 계속 긴장하고 있었는데 말을 하다 보니 계속 옛날 생각이 났다. 나한테 굉장히 좋은 추억이었다. 그걸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성윤 : 내 영화는 영화 하는 사람들 말고도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그들에게도 조금의 위로가 됐으면 좋다.
글: 데일리팀 박수진
사진: 데일리팀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