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 국제경쟁7

국제경쟁 7 섹션에서는 방황하는 인물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길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 어머니로서 홀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인물(<Bad Omen 불길한 징조>), 남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을 억압받는 인물(<Stiletto: A Pink Family Tragedy 뾰족구두: 핑크 가족의 비극>),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인물(<Safe 세이프>)은 각각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만, 좀처럼 쉽지 않아 방황하고, 결국엔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Your Street 당신의 거리>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거리를, <It’s Cold 한파>는 생사의 기로가 된 얼어붙은 도로를, <A Summer Place 여름 휴양지>에서는 두 사람이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살라 파쉬투냐르 감독, <Bad Omen 불길한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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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 세 식구의 아침이 그려진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아들과 어린 딸을 학교에 보내고 일을 하는 파리. 그는 바느질 일감을 받아 집에서 작업하는 사람이다. 일을 시작하려던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자 안경원으로 향하는데, 안경을 새로 맞추기엔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안경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파리는 부족한 돈을 월말에 갚겠다고 말하지만, 단호한 안경사는 이를 거절한다.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안경원을 나선 파리는 일감을 주는 사장을 찾아가 일의 기한을 늘려달라고 부탁해보는데,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아예 일을 뺏길 상황이 되어 이마저도 실패한다. 파리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번엔 이모의 집으로 간다. 그렇지만 사촌이 나와 곧 있을 결혼에 흉조가 될 것 같다며 파리를 집안에 들이지 않고 파리는 이모를 만나지도 못한 채 돌아선다. 마지막 희망으로 지원금을 받기 위해 기관을 방문한다. 기관에서는 이미 몇 차례 방문하며 미망인이고 문맹인인 걸 증명하려고 애쓴 그에게 또 다음에 들르라고 얘기한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덤을 찾은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인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온 아이들을 맞이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가정을 이끌어나간다. 어떤 돌파구도 찾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영화는 한 여성이 지고 있는 현실의 무게를 오롯이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에 가닿는다.

 

칸 메르단 도간 감독, <Stiletto: A Pink Family Tragedy 뾰족구두: 핑크 가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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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택시 기사 일을 하는 중년 남성 하산. 술에 취한 승객을 내려주며 여느 때와 다를 거 없이 일하던 그는 우연히 뾰족구두를 신은 한 여성을 발견한다. 구두의 또각또각 소리가 귀에 꽂히고 그는 홀린 듯 여성이 걸어가는 광경을 바라본다. 차 트렁크에서 검은 봉지 하나를 비밀스럽게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봉지 안에서 핑크색 뾰족구두를 꺼내 신는다. 방문을 닫고 전신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만족스러운 듯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방 안에 들어온 아내 아이젤이 그 모습을 목격한다. 하산은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지만, 아이젤은 이성을 잃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거라며 화를 낸다. 아내에게 뾰족구두로 맞은 그의 머리에 피가 흘러내린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그는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렇지만 아내는 다시 세상이 끝난 듯 노발대발한다. 남성성이 규정된 사회에서 뾰족구두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은 심각한 사안이 되어버린다. 분개한 아내가 쏘아대는 말을 가만히 듣던 그는 결심한 듯 아이들 앞에 뾰족구두를 신고 나타나 춤을 선보인다. 아내는 경악하며 아이들의 눈을 가리려 하는데, 정작 아빠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신나서 함께 춤춘다. 그리고 하산은 아이젤을 일으켜 함께 춤을 추게 한다. 네 가족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그것은 사실 남성이 뾰족구두를 신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언 발링 감독, <Safe 세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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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 한 클럽 안에서 소동이 일어난다. 싸움을 일으킨 남성 대니의 부모가 경찰서를 찾는다. 대니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향을 조사하는 경찰에게 문제가 없는 듯 답변하며 애써 아들의 잘못을 외면하고 축소하려 든다. 폐업한 카지노의 관리자인 그는 자신의 일터 안에 아들을 숨겨둔다. 영화는 조명을 사용해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다. 대니와 싸움을 벌인 상대의 상태를 묻고 “살아는 있어요”라는 경찰의 답변을 들었을 때, 대니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데리러 가는 차 안에서 암전이 발생한다. 아들이 점점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껴지는 암담한 심경을 시각화한 것이다. 어떤 방법이 아버지로서 잘하는 것인지에 관해 불안감으로 무거웠던 그는 많은 고민 끝에 결심이 선 얼굴로 경찰서에 아들을 데려간다. 아들을 숨겨두고 문제를 감추려고만 하던 그가 아들에게 죄를 묻고 아들과 다른 방향의 공간으로 분리되는 것을 택한다.

 

귀진 카르 감독, <Your Street 당신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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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마을의 텅 빈 회색빛 거리. 인적이 드문 공간은 어딘가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마치 생명력을 잃은 듯하다. 영화는 ‘너’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그곳을 가만히 비추어 본다. 도시의 풍경을 정적으로 담아내는 카메라 위로 담담한 내레이션이 덧입혀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거리다. 인물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이름을 거리가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길에 이름을 남기고 떠난 ‘너’의 정체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4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 다른 아이들이 자전거나 인형집을 선물 받을 때 거리를 선물로 받았다는 아이. 이름은 사이메. 1993년 5월, 봄이 찾아올 시기임에도 추웠던 어느 날 독일의 솔링겐에서 일어난 인종 차별 방화 사건의 최연소 희생자다. 신나치주의자들이 일으킨 그 사건은 터키인 5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4명의 부상자를 만들었다. 당시 사건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며 서서히 기억에서 희미해진 그 이름은 여전히 아픈 역사를 머금은 채 그 거리에 남겨져 있다.

 

대닐 이바노프 감독, <It’s Cold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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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설원. 혹독한 추위는 세상과 사람을 집어삼킨다. 길 한복판 동사로 사망한 시체를 확인하러 온 경찰들은 카메라가 방전돼 현장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자 시체를 차에 태운다. 눈을 뜨고 앉은 상태로 목숨을 잃은 그는 얼핏 살아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 경찰이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와야 했나 바로 후회하지만, 다른 경찰은 보고서와 유족들을 위한 것이라 말한다. 시체를 수거해가는 일도 결국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시체에서 냄새가 올라와 히터도 틀지 못하고 돌아가던 경찰들은 버스정류장에 계속 서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얼어붙은 길가 위에서 오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가면 얼어 죽을 것으로 생각한 경찰들은 세 명의 사람을 뒷좌석에 태운다. 그들 중 한 명은 계속해서 큰 소리를 내며 난동을 부린다. 경찰이 차를 세우고 뒷좌석 문을 열자 그들은 자신들을 내리게 할 것으로 생각해 가만히 있겠다며 사정하는데, 경찰은 뜻밖의 행동을 한다. 히터를 켜기 위해 시체를 버린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덩그러니 놓인 시체를 뒤로하고 그들은 떠난다.

 

알렉산드라 마테우 감독, <A Summer Place 여름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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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하늘 아래 윤슬이 빛나는 휴양지의 바닷가, 보트 위에서 생일을 보내는 한 젊은 여성 티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식일 것 같지만, 그의 표정은 따분하기 그지없다. 그 무료함을 깬 것은 바다에 빠져 구조 요청을 보내는 여성 나딘이다. 티나가 그를 구하며 두 사람의 우연한 인연이 시작된다. 티나가 사는 곳은 상류층의 천국으로 변한 지중해 키프로스의 작은 마을 리마솔이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일을 위해 한 파티장으로 향하는데, 그곳은 지나치게 화려하고 행복과 욕망이 넘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티나는 그 안에 섞이지 못하고 혹은 섞이지 않고 멀리서 그저 지켜본다. 티나에게 리마솔은 휘황찬란한 겉모습과 달리 실상은 그렇지 않은 공간이다. 마치 먹음직스러운 사진 속 모습을 기대하고 시키면 딴판인,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놓은 음식처럼 말이다. 낮에 혼자 스쿠터를 타고 가며 달갑지 않은 마을의 풍경을 보던 티나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나딘과 만난다. 두 사람은 함께 스쿠터를 타고 ‘우리 이야기’에 관해 대화하며 새로운 길 위로 나아간다.

 

국제경쟁 섹션은 총 8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국제경쟁 7’ 부문은 10월 18일 월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유소은

2021년 10월 17일 / In Daily News-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