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SFF인터뷰 –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배우 변중희를 만나다.
<실버택배>를 통해 생생한 연기를 선보이며 제1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했던 변중희 배우가 특별심사위원으로 제19회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에 찾았다. 연기에 진심을 담는 자연스러운 배우, 끊임없이 배우는 배우 변중희를 10월 14일 목요일 씨네큐브에서 만났다. 그는 연신 웃는 얼굴로 연기와 영화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영화배우 된 지 오래되지 않은, 항상 새내기 배우라고 생각하는 변중희라고 한다.
39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 교사 연극 동호회를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셨다고 들었다. 첫 연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어떤가.
첫 번째는 연기라는 걸 전혀 모르는 상태로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했다. 그래서 처음 연기는 대사만 안 까먹으면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저보다 다 젊은 선생님들인데, 각자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저를 가르쳐줄 상황이 아니었다. 눈치껏 대사를 잊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첫 신이 한 주인공 배우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거였는데, 지하철 안에서 있던 행동을 하더라. 그때 ‘이게 내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얘기하는 거구나’ 하는 걸 눈치껏 알았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는 무대에 나가기 직전에 너무 목이 말라서 물을 먹는데, 금방 말라버리더라. 그래서 연극을 목마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막에서 물 부은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분장을 처음 해보니까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웃음)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그 모습도 첫 경험치고는 괜찮았다고 자화자찬? (웃음) 그게 처음 공연한 것에 대한 기억이다.
언제부터 연기에 대한 꿈을 꾸시게 되었는지, 배우가 된 과정을 들어보고 싶다.
마흔여덟 살쯤, 집단 상담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프로그램 중에 ‘내가 다시 뭔가를 한다면’ 하고 표현하는 게 있었다. ‘연상화 그리기’라고 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거기서 화려한 모자를 쓰고 화려한 화장을 한 배우를 그리면서 나는 다시 한다면 연극배우를 하고 싶다고 썼다. 의도한 건 없고 정말 떠오르는 대로. 그러고 나니까 정말 해보고 싶더라. 그래서 하고 싶다면 하자는 마음으로 늦게 마흔아홉에 시작하게 됐다.
소수자에 관한 관심이 있다고 밝힌 인터뷰를 봤다. 교사 시절 구치소에 가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상담 봉사를 하신 적이 있다고도 알고 있다. 소외당한 약자의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에도 많이 출연한 것 같은데, 독립영화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이유도 그것과 관련이 있나.
아니다. (웃음) 현실적으로. 연극을 할 때, 1년에 한 번씩 선생님들이 돈을 내서 공연했다. 그때는 연극을 한다는 게 기뻤지 ‘어떤 연극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은 없었다. 그냥 연기하는 것만 재밌고 좋았다. 상담 봉사는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 구치소를 갔는데, 담임으로서 죄책감도 들고 안타까워서 면회를 다녀오고 나서 내가 상담 공부를 했으니까 구치소 상담을 하면 좋겠다고 뜻을 세워 시작했다. 그랬는데 우연히 교정위원이라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구치소에 가서 상담 자원봉사를 많이 하고, 퇴직하고는 집단 상담 형태로 재소자 남성 20명 데리고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했었다. 코로나 19 전까지 했다. 2015년도인가에 교정대상도 받았다. (웃음)
그런 기억도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정말 연기에 도움이 된 것은 내 경험인 것 같다. 학생들, 학부모, 동료 등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겼던 마음들이 세월이 지나니 인물 분석에 도움이 됐다. 나는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다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게. 나는 생물학과를 나와서 과학 선생님을 했다. 상담 심리학을 한 건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순하게 대학원을 갔다. 생물학은 생리적, 유기체적인 거라면 마음이 심리가 되지 않겠나. 그다음 2000년도쯤 돼서는 대안학교라는 게 궁금해서 관련 연수를 받았다. 그러고 나니 2005년도인가 대안학교가 복지가 아닐까 싶어서 사회복지 대학원을 다니고 졸업했다. 사회복지에도 생물학적인 거, 심리적인 게 다 들어가더라. 그렇게 살아왔던 게 연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때 당시에 우리 집 양반이나 주위 사람들은 나를 단순하게 봤던 것 같다. 나는 재테크는 꽝테크다. (웃음) 그런데 배우러 다니고 활동했던 것들. 특히 학생들하고 함께했던 것. 그게 지금 제일 큰 재산인 것 같다.
마리끌레르의 배우 10인의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 영상에서 본 게 인상 깊었다. 짧은 시간에 감동을 주는 연기였고, 그래서인지 많은 호응이 있었다. 특히 “이 사랑, 짝사랑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라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 영상이다 보니 배우님의 연기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는지 궁금하다.
교직 생활을 39년 하면서 학생들은 짝사랑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날 싫어한다. (웃음) 그런데 나는 좋아한다. 늘 아이들에게 고맙고. 마리끌레르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고백한다고 하면 무엇이 될 것인가 독백 영상을 만든다고 하는데, 정말 그 글이 다 내 마음이다. 연극을 하면서 우연히 어느 감독님의 단역이 필요하다는 의뢰가 왔는데, ‘우리가 지금 영화 안 해보면 언제 해봐. 그냥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정말 하나의 이벤트처럼 했다. 그런데 그 짧게 나오는 영상 보고 내가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퇴직하면 영화배우 할까 봐’ 이렇게 농담처럼 했는데, 그 감독님이 계속 소개를 해주셨고, 그게 오늘날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우리가 흔히 짝사랑이라고 하면 이뤄지지 않는 슬픔을 얘기하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 짝사랑이라기보다는 정말 아낌없이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가지려고 하다 보니까 슬프지 않더라. 영화도 마찬가지다. 처음 영화 출연을 하고 나서 이 작품이 언제 만들어지나 했다. 너무 오래 걸리더라. 그래서 감독님하고 가끔 통화하면서 “참 오래 걸리더라” 그랬더니 그 감독님이 “영화배우는 기다리는 직업이에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조바심내면 정말 슬플 것 같은데, ‘내게 주어짐은 은총이고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활을 열심히 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소중한 39년의 보물이 있으니까. 이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고백을 그렇게 하게 되더라. (웃음)
<작은 빛>,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실버택배>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섬세한 연기를 통해 연기력을 입증해주셨다. 그중 <실버택배>로 제1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단편의 얼굴상과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수상하셨다. <실버택배>를 촬영했을 때와 그 작품으로 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어땠는지 당시 소회를 들어보고 싶다.
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잘했다고 얘기하지만, 뭘 잘했는지도 모르고. 그게 홍익대학교를 졸업하는 김나연 감독님의 졸업작품이다. 대본을 맞춰 가면서 20대 후반이 쓰는 용어가 70대 언어가 아니라서 그런 것만 서로 조율하면서 했다. ‘내가 이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그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 생활, 거기서 오는 자신의 패턴을 고민하다가 ‘그 장면에 이랬을 것이다’라는 것만 최대한 잘하려고 했지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계산적이기보다는 동물적인 배우인 것 같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웃음) 어느 유명한 배우는 대본에 문단별로 감정을 표시한다는데, 나는 그런 건 안 되더라.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서 되는 거지 그렇게는 안 되더라. 그것도 아마 좋은 경험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
영화에서 뵈었을 때,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저 인물은 저기 살아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려고 마음을 많이 비운다. (웃음) ‘이걸 좀 더 잘 표현해보고 싶다’ 하면 감독님들이 컷한다. 연극 톤이 좀 나온다고. 그래서 그런 걸 다 덜어내고 편하게 하려고 애를 많이 쓴다. (웃음)
이번에는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에 특별심사위원으로 자리를 빛내주시게 되었다. 심사위원이 되어 참석하는 영화제는 어떤지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굉장히 놀랐다.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인가?’, ‘내가 심사할 만한 역량이 되나?’ 싶었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 근데 정말 기쁜 건 내가 선정했던 배우상 후보가 변요한 특별심사위원과 의견이 딱 맞더라. 그래서 정말 다행이었다. (웃음) 사실 (변요한 특별심사위원은) 정말 전공한 분이지 않나. 그래서 ‘영화를 보는 눈이 조금 길러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가 내 성장을 도약하게 해준 것 같다. 그저께 다리를 다쳤는데, ‘못 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어떻게 해서든 가자’ 하는 마음만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치료하고 다행히 왔다.
‘단편의 얼굴’로 인정받으셨던 배우님이 ‘단편의 얼굴상’을 선정해주게 되었다. 심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나 ‘단편의 얼굴’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후보로 생각한 사람은 상당히 연기 경력이 많은 분이었다. 첫 번째 후보로 낙점한 분과 비교했을 때, 연기의 흐름이 매끄러운 것보다는 진정성을 중요하게 봤다. 정말 그 마음으로 그 사람이 되어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 울림이 있더라. 두 번째 분은 굉장히 잘하고 매끄러운데, 컴퓨터 언어 같은 느낌이었다. 흔히 매소드 연기라고 하지 않나. 그 안에서 진국처럼 피어오르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보가 가녀리고 젊은데도 그 상황에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너무 교만한 평이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어보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작품 계획 혹은 앞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얘기해주셔도 좋을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질문 같은데. (웃음)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자연스러웠다’라는 말이다. 단편영화를 하나 찍었을 때, 감독님이 가편집본을 어떤 감독님에게 보여줬는데, 자연스럽다고 얘기해줬다 해서 기분이 좋았다. 어떤 인물이 되었든 인물을 가리지는 않는데 그 인물에 제대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나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되고 시간만 맞으면 캐스팅에 다 응낙했는데, 이렇게 다리를 다치고 나니까 이제 건강도 생각하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오래 하지 않을까. 상을 받으면 물론 좋지만, 그런 것보다도 나에게 기대하고 나를 캐스팅했는데, 그 작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발휘하려고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막상 배우가 되어보니까 나를 버리는 게 쉽지 않더라. 내가 살아온 경험이나 가치관, 말투, 행동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더라. 그런 것도 배우는 사람으로서, 정말 배우는 배우가 되고 싶다. (웃음)
글: 데일리팀 유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