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도 쓸쓸한 삶의 이야기 – 국제경쟁3
사는 건 쉽지 않다. 내 눈에 비친 남들의 삶은 평탄하기만 한 것 같은데 유독 내 삶은 배배 아니 빼빼 꼬여있다. 국제경쟁 3 섹션의 6편의 영화는 그런 삶들을 보여준다.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는 호된 훈육을 이어가던 아버지의 죽음과 엄마 그리고 딸의 뒤얽힌 관계를 보여준다. <테크노, 마마>는 보다 날이 선 아들과 엄마의 현재를 통해 그리하여 ‘사랑은 어떻게 전해지는가’ 묻게 한다.
고독한 인생의 단면은 원할 때 언제든 쓰러짐을 연기하는 <낯선이들>과 택시 운전사 우사마 그리고 그의 마지막 손님인 조이스의 하룻밤 여정을 담은 <마지막 손님>에 잘 담겨 있다. 끝으로 애니메이션 <얄라!>와 서로 다른 두 데이빗의 지금을 담은 <데이빗>은 힘듦과 위트 사이를 넘나들며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고독함, 쓸쓸함, 외로움의 틈새에 사소하게 번지는 웃음과 눈물이 여기에 있다. 작품들은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다만 그저 듣고 싶은 위로를 깊고 넓게 품는다. 그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장 젱안 감독, <임종의 자리에 누워서>
무겁고 단단한 분위기가 전체 러닝타임을 압도한다. 서른 살의 딸 맹난은 폭력적인 훈육을 일삼던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났다가 그의 장례식을 치루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건 그런 맹난의 얼굴과 어머니의 모습이다. 장례식장을 분주하게 오가며 맹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너를 사랑했다’는 류의 위로를 건네는 삼촌 혹은 아버지의 친구들은 주전자 따위에 반사되어 흐릿한 실루엣으로 드러날 뿐이다.
받은 상처를 터뜨리지 못하고 순종적으로 맡은 일들을 처리하는 맹난과 맹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 사이의 감정이 고조될 때쯤 돌연 시점이 바뀐다. 마치 죽은 아버지의 관점을 투영한 듯한 카메라는 맹난을 바라보고 어머니를 지나가고 식장 곳곳을 쳐다보다 이내 다시 맹난에게로 향한다. 그 불투명한 시선을 인식하는 건 맹난 뿐이다. 사랑은 주는 사람의 뜻대로 완성되는가 혹은 받는 사람의 뜻으로 완성되는가. 영화의 마지막, 불안정하게 서로를 인식하는 아버지와 맹난에게서 투박하고도 뜨거운 감정들이 스쳐간다.
네이라 나사르, 에두아르 피툴 감독, <얄라!>
폐허가 된 도심 한복판. 폭죽이 떨어지고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와중 한 남자가 짐을 챙겨 떠날 채비를 한다. 그때 수영복 차림의 한 아이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실랑이 끝에 남자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나타난 아이는 수영장을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남자 또한 아이를 말리다가 죽음의 문턱 앞에 놓인다. 이들을 구사일생 살려준 건 “폭력 금지” 팻말이 세워진 홍등가. 홍등가에 걸린 형형색색의 빨랫감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힘들게 도착한 수영장에서 이들은 무언가를 마주한다. 과연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수영장에서 이들이 보게 된 것은 무엇일까? 애니메이션만이 발휘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에너지로 가득 찬 작품으로 절망의 끝 혹은 새 희망의 서막에서 어떻게든 우리는 나아간다는 걸 역설한다.
사울리우스 바라딘스카스 감독, <테크노, 마마>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작품이다. ‘테크노’라는 음악 장르를 차용, 반복적인 리듬과 멜로디로 트랜스 상태에 빠질 것만 같은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와중 색의 대조 혹은 대비를 통해 작품의 스타일리시함을 살렸다. 베를린의 유명 테크노 클럽 ‘베르그하인’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나키타와 그의 어린 동생 오스카는 늘 빨간색의 강렬한 옷 혹은 속옷으로 대표되며 불안정하게 그들을 보살피는 어머니는 조금은 색이 바란 파란색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시도 때도 없는 폭언과 보육에 지친 나키타는 어머니를 도우며 번 돈으로 아버지가 있고 또 테크노 음악이 있는 베를린으로 떠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고 예상을 벗어나는 어머니의 행동에 분노한 나키타는 울분에 차 테크노 음악에 틀고 그 안에 갇혀있다 이내 집을 떠난다. “사랑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라는 나키타의 질문에 돌아온 어머니의 진심 어린 답변과 그에 손에 들려준 마지막 선물이 ‘마마’의 많은 것을 응축한다. 사랑하는 방법과 그 과정의 단절을 담은 작품.
노라 롱가티 감독, <낯선이들>
이번 국제경쟁 3 섹션의 가장 모호한 작품이다. 영화는 온통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주인공은 왜 자꾸 쓰러지는지, 왜 쓰려지고자 하는지, 왜 그의 쓰러짐 앞에서 사람들은 반응하지 않고 또는 왜 익숙하게 반응하는지. 주인공의 쓰러짐이 ‘우아하게 연출된 것’임을 알아챌 때쯤 우리는 좀 더 깊숙하게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영화의 후반부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쓰러지는 여자’에게 곁을 내줄 때쯤 스멀스멀 또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 여자의 쓰러짐은 곁이 필요한 사람에게 향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가 누운 자리는 나만을 위한 자리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물음들이 말이다. 쓰러짐, 외면, 보다듬음 사이 행위의 이유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는지.
에드슨 다 콘세이차오 감독, <마지막 손님>
피곤하고 까칠한 택시 운전기사 샘은 실수로 그날의 마지막 손님을 받게 된다. 노골적으로 대화하고 싶지 않음을 드러내도 자꾸만 말을 붙이는 마지막 손님 브리스데는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녘임에도 굳이 시내를 통해 목적지에 가줄 것을 부탁한다. 불편한 걸음걸이에 어딘가 사연이 많아 보이는 그의 부탁을 샘은 거절하지 못하고 둘은 함께 짧고 긴 여정을 떠난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 샘은 ‘우사마’, 브리스데는 ‘조이스’란 애칭을 공유하고 서로의 한 ‘시절’에 대해 말한다.
“(꿈을 포기한) 당신의 핑계는 뭐죠?”, “한번 해봐서 안 되면 또 해봐요.” 따뜻하고 진심 어린 조언이 스크린을 채울 때, 괜찮다고 애써 자신을 속이고 있던 샘의 마음에 동요가 일고, 이는 곧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와닿는다. 브리스데의 최종 종착지는 어디일까? 짧지만 선명했던 그날 밤의 여정. 영화는 일상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선물 같은 깨달음을 평범하고 특별하게 녹여낸다. 샘 아니 우사마에게 그랬듯 작품을 본 누구에게나 이날 밤의 기억은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다.
재커리 우즈 감독, <데이빗>
두 명의 데이빗과 이들이 동시에 필요로 하는 한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어린 데이빗에게 그는 아버지이며 큰 데이빗에게 그는 상담사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꼭 아버지가 경기를 보러 와줬으면 하는 데이빗에게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자살 직전의 순간을 오가는 또 데이빗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큰 데이빗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상담사이자 아버지인 그는 도통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과연 데이빗은 레슬링 경기에 아버지를 데려갈 수 있을까? 큰 데이빗은 이 사이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변화하는가? 질문의 끝 중요한 포인트를 누설하자면 그건 바로 ‘웃음’이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 웃는다는 것. 거기에 날카로운 해학과 핵심이 있다.
국제경쟁 섹션은 총 8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국제경쟁 3’ 부문은 오는 10월 15일 금요일, 10월 17일 일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