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그러니 남겨진 다는 것은 – 국제경쟁 4
국제경쟁 4 섹션의 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으로 인해 덩그러니 남겨졌다. 살해 현장을 청소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농가>,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들 그리고 남편과 자꾸만 멀어지는 <내 아들은 화장실에 자신을 가둔다>의 엄마가 그렇다. 어느 날부터 계속해서 구덩이를 파는 아버지를 어쩔 수 없이 도와야만 하는 딸의 이야기를 그린 <인 더 소일>에서 역시 각 캐릭터는 저마다의 위치에 덩그러니 존재할 뿐이다.
그중 <반딧불이> 조금 더 자연에 초점 맞추고 <나이트 워치>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시선을 고정한다. 관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관망하고 관조하며 스스로 이해하는 것 뿐. 각기 다른 사연, 각기 다른 욕망, 열망 사이에 나만의 서사를 덧입히며 이들을 받아 들여보는 건 어떨는지.
디안 웨이스 감독, <농가>
맥락은 알 수 없지만 긴장감을 조성시키는 대화가 오고 간다. “이웃들의 안부를 묻고 가장 더러운 걸 닦는 일.” 이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작은 근육 하나 편히 놓지 않고 경직된 두 여성은 이내 한 농가에 도착하고 그제서야 맡은 일의 실체가 드러난다. 죽은 자의 마지막 흔적을 치우는 것.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뜬 한 남성의 빨간 피를 쓸어 담고 카페트에 묻은 혈흔을 익숙하게 뽑아낸다.
사람이 떠나간 곳에 놓인 것은 그게 무엇이든 이상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았을 벗어 던진 바지, 꾸겨진 쪽지 따위가 숨을 몰아쉬게 할 만큼 적재적소에서 단단한 몰입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영화는 일터를 나와 덩그러니 창밖을 보는 여성의 시선으로 끝을 맺는다. 그가 맹렬히 바라본 것은 좀 전에 직접 묻은 강아지인가 혹은 그와 닮은 개인가. 해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레오 비텐코르트 감독, <반딧불이>
여기 사람과 동물이 있다. 사람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동물은 가끔 이들을 바라보고 또 자주 자신의 길을 간다. 늦은 밤 두 명의 사내가 속옷 차림으로 광활한 자연 아래 놓인 한 개울물에서 샤워를 한다. 그놈과 데이트를 했는지, 그놈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고 그 주변을 스산하고 동시에 부푼 멜로디가 감싼다. 뚜렷한 줄거리는 없다. 다만 보여주고 흘려보낼 뿐이다.
장면이 바뀌고 한 남자가 ‘씻고, 수다 떨고, 노래하고, 기도한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어디선가 불규칙한 신음소리가 들려 온다. 얼굴의 윤곽이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드러날 때쯤 우리는 그 소리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거대한 자연 그 한 가운데 놓인 공원엔 이렇게 많은 순간들이,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린다.
쿠바 야누스체스키 감독, <내 아들은 화장실에 자신을 가둔다>
아들이 화장실에 자신을 가둔다고 했지만 정작 갇힌 것은 아들이 아닌 엄마다. 넓고 깨끗하게 정돈된 집안에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꾸민 엄마지만 그는 자꾸만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의 불안함을 보여주는 건 작품의 시작, 이어폰 가득 그가 명상을 듣고 있었으며 갑작스레 내린 비에 홀로 고군분투하며 빨개감을 들여온 것에서 알 수 있다. 엄마는 왜 이렇게 초조한 것일까. 답은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 21살 된 그의 아들은 엄마를 밀어낸다. 남편은 늘 정장 차림으로 언제라도 일터를 향해 떠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관계가 조금은 개선됐나 싶을 찰나 엄마에게 별다른 말 없이 집을 떠난다.
남겨진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종착 될 것인가. 가족이란 테두리 안의 미묘한 신경전과 토마토, 컵 등을 통해 감정을 절묘하게 비유한 점이 돋보인다. 장성란 영화저널리스트의 추천작.
쥘리엥 허냐르 감독, <나이트 워치>
욕망이 뒤엉키듯 현실이 뒤엉킨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술집 앞, 한 여자가 잔뜩 화가나 가게를 뛰쳐나온다. 뒤이어 등장한 술에 취한 남성은 여자의 차에 올라타고 이내 이 둘이 연인 관계임을 유추할 수 있다. 순간 삐거덕거리며 달려가던 차는 갑작스레 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운전석에 앉아있던 여자는 제자리에 없다.
여자를 찾기 위해 자리를 뜨는 남자. 이후 그가 만나는 것들은 온통 뿌옇고 원색적인 것투성이다.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관계에 취한 사람들. 가면을 쓰고 때로는 동물이기도 한 것들 틈에서 남자는 여자의 모습을 좇아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인다. 드디어 여자의 곁에 다다랐을 때 남자의 환영 너머의 순간들이 영사기에 비춰 펼쳐진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이곳은 어디고 저곳은 어디인가. 욕망과 본능 그리고 쾌락 사이를 정처 없이 오가는 작품.
캐스퍼 루돌프 키엘센 감독, <인 더 소일>
으스스한 분위기가 작품의 전반을 감싼다.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의 아빠. 다정하게 딸을 부르는 듯하지만 정작 딸의 요구에는 별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가 몰두한 것은 다름 아닌 구덩이 파기. 조금만 더 파면 조금 있으면 완성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아빠는 편집증적으로 파내기에 몰두한다. 이 행위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인지는 선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얼핏 예상하게 하는데 딸의 상상에 그려진 구덩이에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이 구덩이가 그의 무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활강하는 현악기로 오싹한 느낌을 만들고 줌인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 혹은 표정을 확실히 끌어당긴다. 크게 많은 요소를 더하지 않고 최소한의 요소로 관객을 작품과 함께 호흡하게 한다. 인 더 소일. 그는 왜 땅속으로 향하고자 하는가. 이때 서로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많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열어놓는 영화다.
국제경쟁 섹션은 총 8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국제경쟁 4’ 부문은 오는 10월 16일 토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