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올드 앤 뉴: 국내감독전1 + 광화문 랑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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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올드 앤 뉴’는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의 전통적인 특별프로그램으로 국내 유수 감독의 단편작을 볼 수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2개의 섹션으로 나뉘었고, 섹션 1은 <족구왕>으로 이름을 알린 우문기 감독의 <몽구스피킹>, <메기>로 팬덤 ‘메기떼’를 형성하며 독립영화계 열풍을 일으킨 이옥섭 감독의 초기 단편영화 <4학년 보경이>, <82년생 김지영>으로 호평받은 김도영 감독이 연출한 <자유연기>, <시동>, <글로리데이>로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인 최정열 감독의 <잔소리>로 구성됐다. 국내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감독들의 초기 단편을 만나볼 특별한 기회인 만큼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고, 매진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몽구스피킹>은 영화감독 지망생인 몽구가 제작자 병곤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테이블 위 소품을 활용해 영화 장면을 실감 나게 구현해낸다. <4학년 보경이>는 덕우와 4년째 연애 중인 보경이 좋아하는 선배가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로, 인물의 감정을 CM 송을 이용해 표현한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유연기>에서는 배우인 지연의 육아에 치이는 일상을 보여주며 엄마로서, 단역 배우로서 마주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잔소리>는 어머니의 익숙한 잔소리로 채워진 작품으로, 원 신 원 테이크 형식이 눈에 띈다.
이날 광화문 랑데부는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 생중계로 진행됐다. 관객과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덜고자 영화 상영 전 우문기, 이옥섭, 최정열 감독이 무대에 올라 짧은 소감을 전했다. 종영 후에는 세 명의 감독이 영상으로 참석한 광화문 랑데부가 이어졌다.
영화학도 시절 만들었던 영화인데, 그때를 돌아보면 어떠신지.
우문기 감독(이하 우문기):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아요. 단편은 돈도 많이 안 들고 분량이 짧기도 해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금방 만들고, 1년에 2~3편씩 만들기도 하고, 매년 영화제 출품해서 성과도 보이고, 그래서 영화 만드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장편 영화는 워낙 오래 걸리고 만들기 어려우니까 영화감독으로서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는데, 단편영화 만들 땐 계속 만들고, 다음 영화 만들 생각하고, 그때가 영화감독으로서 신나게 하는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대학 때 영화를 많이 찾아보잖아요. <잔소리>는 입시생일 때 봤던 영화였고, 우문기 감독님의 <이공계 소년>은 학교 다닐 때 워크숍 때 찾아봤던, 아이디어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영화예요. 아직도 저는 두 분 단편영화의 장면 장면이 다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만든 연도를 보니까 정말 오래됐더라고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정열 감독(이하 최정열): 저도 오랜만에 <잔소리>를 상영하게 됐는데,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님들의 작품과 같이 상영돼서 너무 좋고 감사했어요. <잔소리>를 만들 때가 영화를 막 시작할 때였어요. 저희 어머니가 실제로 저렇게 잔소리를 하지는 않지만, 영화 막 시작할 때 단편영화 스태프를 하면서 새벽 4시쯤에 영화 찍으러 나가는데 엄마가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만든 게 <잔소리>인데, 엄마한테는 굉장히 욕을 많이 먹었죠. (웃음) “나를 나쁜 사람을 만들었다”라고.
<잔소리>에 대한 소감을 올려주신 분이 계신데, “본가에서 떨어져 자취 생활하는데, 그동안 못 들은 잔소리를 오늘 다 들었네요. 너무 감명 깊었습니다.”라고. 역시 좋은 단편은 세월이 지나도 감명을 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정열: 죄송합니다. (일동 웃음) 극장에 재밌는 영화 보러 오셨을 텐데.
카톡방에서 <몽구스피킹>의 카페 테이블 위에 있는 물품으로 영화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이 공들여 찍으신 장면 같은데, 그게 너무 재밌으셨대요. 그때 카페 알바생이 손으로 묘사를 하잖아요. 그런데 매니큐어를 왜 두 손가락에만 발랐는지, 의도된 건지 물어보시네요.
우문기: 솔직히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일동 웃음) 아마 극 중 알바생이 매니큐어를 바르다가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멈췄고, 끝날 때까지 나머지를 바르지 못하고 듣고 있었다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마지막 장면에서 손가락으로 결투하니까 장화 신은 것처럼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손가락이나 테이블 위의 물건으로 영화의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한다는 게 구상하기는 쉬운데 구현하기가 어렵잖아요. 콘티를 상세하게 짜셨는지, 촬영할 때는 얼마나 세심하게 하신 건지 궁금해요.
우문기: 학교 수업 때 만든 작품이었는데, 여러 제한이 있었어요. 예산, 일정에 있어서. 장소라고 해봐야 카페 하나였고 배우도 거의 안 나와서 어렵지 않을 줄 알았는데, 테이블 신 준비가 되게 오래 걸리고, 쿠키도 특수 제작한 쿠키거든요. CG도 들어가서 품이 많이 들었어요. 대화하는 장면은 오래 안 걸렸는데, 테이블 위의 신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구현을 잘 해낸 게 이 영화의 묘미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4학년 보경이>에서 중간에 덕우가 죽은 척을 한 건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이 일어난 건가 궁금해하게 되는데요. 카톡방에서 덕우는 어떻게 죽은 척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시다고, 덕우가 두 사람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쓴 노림수라고 생각하셨대요.
이옥섭: 제가 생각하고 짰던 것보다 재밌게 해석해주신 것 같아요. 전 정말 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이 남자가 꾸며낸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 볼 때, 주인공 여성 캐릭터가 가진 솔직함, 생생한 욕망이 눈에 띄어서 너무 좋아했는데, 다시 보니 덕우 캐릭터도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이옥섭: 그때 당시 제가 욕망이 넘쳐흘렀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덕우는 당시 만났던 남자친구 캐릭터였거든요. 되게 좋은 사람이었네요. (일동 웃음)
<잔소리>는 다들 뭉클하게 보셨나 봐요. 카톡방에서 “<잔소리> 처음 관람했는데, 뭉클하네요.”라고 말씀해주셨고, “마지막에 제목 위에 나온 한자는 무슨 글자인가요?”라고 물어봐 주셨어요.
최정열: ‘남을 잔’이에요. 잔소리라는 게 들을 때는 듣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저도 들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좋은 습성이 있어서 그렇게 살았는데, 어느 순간 부모님이나 주변 분들의 이야기가 가끔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한자를 쓰게 됐습니다.
우문기: 저도 그거 14년 전에 궁금했는데. (일동 웃음)
<잔소리>는 형식이 야심차다는 걸 다들 눈치채시잖아요. 원 신 원 테이크고, 길해연 배우님이 엄청난 연기력으로 우리를 몰입시키는데요. 카톡방에서 대사를 다 외워서 하신 건지, 배우님의 애드리브가 섞인 건지 물어보셨어요.
최정열: 시나리오를 쓰고, 캐스팅을 하고, 시나리오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거의 시나리오대로 하셨고 애드리브는 없었는데, 선배님이 생각하신 걸 미리 말씀해주셔서 시나리오에 녹이는 과정이 있었어요. 사실 선배님이 너무 잘해주셔서. 저희가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많이 찍을 수가 없었어요. 딱 세 테이크 안에. 필름 값이 비싸서 테이크 3번을 갈 수 있는 필름 양밖에 없었어요. 그랬는데 한 번도 NG를 내지 않으셨어요. 세 번째 테이크가 오케이가 됐고요. 그 덕분에 현장에 긴장감이 있어서 스태프나 배우나 집중해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거. 필름으로 찍은 작품을 우리가 여기서 다 같이 다시 본다는 게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가 생각하게 되네요. (웃음) 카톡방에서 어머니의 애정어린 생생한 잔소리가 마냥 듣기 좋지만은 않다가 마지막에 영정사진을 보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고 말씀하셨네요. 그리고 특별히 필름으로 찍으신 이유가 있으신지 물어보셨네요.
최정열: 어렸을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이게 거의 필름의 마지막 세대에 찍은 영화인데요. 필름만으로 찍는 시대는 아니었고, 디지털도 나오는 시대여서 모든 사람이 반대했어요. “괜히 비싼 돈 들이고 영화도 못 만들 것 같다. NG 나면 어떡하냐.”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근데 집중력을 갖고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가족사진이나 어머니의 사진을 한 장 갖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게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사진을 가지고 싶지 않을까. 그게 이 영화의 성격과 맞겠다’ 하는 생각으로 고집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좋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필름으로 찍은 덕분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있었던 것 같고요.
<4학년 보경이>에 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보경과 덕우의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 속 요소가 있는데, 가구를 같이 옮기고 작업실을 꾸미는 게 언어적이지 않은 요소로 보이잖아요. 카톡방에서 덕우가 나중에 싸우고 나올 때 커튼은 안 건드리는 게 보경이가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만 분노를 표출했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런 의도로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하신 건지, 둘이 같이 작업실 살림을 꾸미는 걸 어떤 느낌으로 구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옥섭: 실제로 영화 제목이 초반에 ‘커튼’이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말씀해주셔서 떠올랐어요. ‘커튼을 안 뜯었었구나’ 생각이 들었는데요. 내가 어디에 있어도 도와달라고 하면 와서 같이 들어줄 남자친구라는 캐릭터로 먼저 접근했던 것 같아요. 약간 귀찮은 일이고 굳이 안 해줘도 되는데 내 말을 다 들어줄 사람으로 접근했고요. 커튼을 뜯으면 애매하잖아요. 그래서 안 하고 갔던 거였어요. 다 남자친구의 어떤 따뜻함이 그런 행동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4학년 보경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눈길이 확 갔던 기억이 있거든요. 카톡방에서도 왜 다른 학년도 아니고 4학년이고 동양학과인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세요.
이옥섭: 실제 친한 친구가 동양학과였어요. 그 친구의 이야기는 아닌데. 연인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졸업하면 하자는 식으로 미뤘던 게 있었고, 졸업이라는 게 무거운 게 있었어요. 미뤄왔던 숙제를 해야 할 선택의 기로였던 것 같아요. 이 사람과 더 멀리 같이 함께할 것인지 아닌지가 졸업에 달려있던 압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졸업반 때 들었던 이상한 마음이 뒤섞이면서 연인 관계에도 그런 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했고요. 표현적으로 들었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느낌도 들잖아요. 그런 기분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4학년 보경이> 하면 떠오르는 캐릭터의 형상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느낌이어서 재밌었어요.
이옥섭: 근데 제가 말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말하는 게 지금 저희 넷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지금 말한 거 후회할 것 같은데. (웃음)
오프더레코드 같은 묘미가 있군요.
우문기 감독님께 질문드릴게요. 카톡방에서 몽구라는 인물에게는 집게나 담배 같은 빨간색물건이, 알바생에게는 파란색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고, 색깔을 인물별로 의도하신 게 있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우문기: (웃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없었던 것 같기도 한 게. (일동 웃음) 원래 빌린 카페 벽이 파란색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매니큐어도 파란색으로 했을 수 있었던 것 같고.
이 답에서 우리가 얻어가는 정보가 도대체 뭐죠? (일동 웃음)
우문기: 근데 신경 안 썼던 것 같아요. 우연의 일치였던 것 같습니다. 담배는 말보루 레드라서 빨간색이지 특별히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말보루는 다 빨간색이었잖아요.
최정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는 해석의 장르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카톡방에서 한 분이 “알아서 해석하면 될까요?”라고. (일동 웃음)
우문기: 영화는 제 손을 떠나는 순간 보는 사람의 소유가 되니까요.
<몽구스피킹>이 영화 좋아하는 사람에게 애틋할 것 같은 게 영화 얘기 신나게 할 때가 제일 재밌잖아요. 만드시는 분들은 어떤 영화를 만들지 얘기할 때, “재밌을 것 같아” 하고 공감해주는 경험이 감독님들께 얼마나 힘과 응원이 되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만드셨을 텐데, 감독님은 그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세요?
우문기: 그런 경험 있죠. <족구왕> 때, 막바지에 저도 시나리오 많이 고쳐서 너덜너덜한 상태고, 같이 만들었던 광화문 시네마 친구들도 재미없는 것 같다고, 하지 말자 그래서 제가 일주일만 생각해보고 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래서 영화 안 하는 다른 친구한테 말로 해줬거든요. 그랬더니 너무 재밌다고 촬영 현장에 도와주러 가면 안 되냐고 그래서 하게 됐어요. 영화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족구왕> 때는 극적인 순간이어서 그 친구에게 너무 고마워요.
소중한 친구분 이름 한 번 불러주세요.
우문기: 잘 지내지? 우진아.
우진님 <몽구스피킹> 크레딧에 나오지 않나요?
우문기: 네. 맞아요.
여기 사실 그거 알아보신 관객분 계셨는데, 우진님이 그 우진님이냐고 물어보셨어요.
우문기: 근데 아니에요. 그 친구가 이름을 바꿨거든요. (일동 웃음)
카톡방에서 세 감독님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이에요. 이분은 몇 년 전에 쓴 글이나 그림을 보면 어설픈 점이 보여서 부끄러우실 때가 많으시대요. 감독님들은 옛날에 만든 작품을 다시 공개하고 마주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최정열: 전 사실 제가 만든 작품을 극장에서 잘 못 봐요. 단편이든 장편이든 극장에 상영되기까지 굉장히 반복적으로 시청하게 되잖아요. 극장에서 볼 때는 작품을 온전히 볼 수 있기보다는 관객들 반응을 체크하게 되는 습관 때문에 잘 못 보는데요. <잔소리>도 오랜만에 상영한다고 해서 집에서 다시 보고 왔는데, 말씀해주신 대로 ‘왜 이걸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때 현장이 생각나면서 약간 몽글몽글해지더라고요. 10년도 넘은 작품이라.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저는 안 좋은 것만 주로 찾아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잘 못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옥섭: 지금이면 안 할 것 같은 되게 거친 편집 호흡 같아요. 지금도 거친데 그때는 더 거칠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때는 저랬었네’ 생각했고요. 그때 엄청난 누군갈 향한 상사병 같은 상태에 막 썼던 거여서 ‘저 때 진짜 힘들었었지’ 이런 것만 많이 생각나요. 누굴 좋아하면 행복하지가 않잖아요. 되게 고통스럽잖아요.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나고, 되게 더울 때 찍어서 그 여름이 기억나요. 저도 영화제 때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나, 어디에서 재밌게 보나를 뒤에서 보고 싶어서 항상 봤었던 기억이 있었어요.
감독님들에게는 작품이 작품일 뿐만 아니라 그걸 만들던 시절의 앨범 같은 느낌이신가 봐요.
우문기: 저는 정기적으로 제 작품을 보는데. (일동 웃음) 삶의 자신감이 떨어질 때. 즐거웠던 때고 그 영화 보면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니까. 영화가 너무 힘들 때 옛날 거 보면 ‘소질 있었네’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 주문을 거는 건지 찾아보기도 하고, 링크를 보내주기도 하고요. (일동 웃음) 제 건 유튜브에 다 있어요. 보면 저는 그때 생각이 많이 나서 힘을 얻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다시 보면서 그때만 보여줄 수 있는 감독님들의 에너지가 보여서 좋았어요. 카톡방에서도 감독님들 눈에는 고칠 점이 많이 보인다고 하시지만, 그때 그 상태로 수정하지 않고 그때 감성으로 만들어져서 더 좋으시다고 하셨어요. 필모그래피를 따라 보시면 비교하면서 보니까 더 좋을 것 같아요.
이옥섭 감독님 영화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영상이 흘러가면서 감각적으로 순간의 감정을 다른 문화적 코드를 끌고 와서 터뜨리는 재미가 있잖아요. 그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여기서도 CM 송을 활용한 게 눈에 띄더라고요.
이옥섭: 그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은 하나도 못 하고. (일동 웃음) 그게 너무 좋게 말씀해주신 거고요. 그때 편집을 구교환 선배랑 같이했는데, 이거 넣어볼까 하면 그냥 넣었어요. 자기검열이 하나도 없던 시기였어요. 계산이 아예 없고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지금은 자기검열을 계속하니까 아예 안 써질 때도 있는데, 그때 참 좋았었네요. 20대이기도 했고.
카톡방에서 한 분이 우문기 감독님에게 푹 빠지셨나 봐요. 우문기 감독님 말씀하실 때마다 너무 웃긴데, 몽구는 감독님의 이야기인지 물어보셨어요.
우문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겠죠. 영화감독이 자기 영화를 이야기하는. (한숨) (일동 웃음) 학생 때도 수업시간에 찍을 영화 시나리오 앞에서 얘기하면, 내 앞에 얘기한 옥섭이 영화는 사람들이 질문도 많이 하고 고칠 것도 별로 없다고 하는데, 내가 얘기하면 아무도 안 듣고. 내 영화는 아무도 관심 있게 안 보고. 그런 경험 매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 영화의 총아인 감독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우문기: 모두가 그런 거예요. 영화에 알바생이 들어 있는 이유가, 재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응원군이 오늘도 많이 생기신 것 같아요. 카톡방에서 우문기 감독님 입덕해서 감독님 유튜브 필모그래피 정주행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우문기: 제 채널 있습니다. (일동 웃음)
우문기 감독님 토크쇼에 데뷔해주셔야 할 것 같다는 얘기도 해주시네요.
<잔소리> 관련해서 어머니 영정사진은 이 영화를 위해 찍으신 건지 배우님 사진인 건지 물어보시네요. 그 사진이 유독 슬프셨대요.
최정열: 선배님이 가지고 계셨던 사진을 상의 끝에 고른 거였어요. 가장 정형화된 사진으로 골랐어요. 자연스러운 사진도 많았는데 그런 게 더 좋겠다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배우님이 사진에서 밝아 보여서 더 슬펐다고 하시네요. 이 영화는 구성과 형식이 잘 달라붙은 영화잖아요. 감독님이 이야기를 구상하실 때 원 신 원 테이크로 가야겠다 생각하신 건지, 형식과 이야기가 어떤 순서로 떠오르신 건지 궁금해요.
최정열: 10년도 넘은 작품이라 저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웃음) 처음에는 ‘엄마가 잔소리하는 영화를 찍어야겠다’ 생각했고요. 초고는 점프컷으로 이뤄졌어요. 날이 계속 바뀌는데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지면서 마지막에 컷이 바뀌고 사실은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고 온 아들의 모습에서 끝나는 거였는데요. 그 호흡이 이야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걸 한 컷으로, 집 안에 엄마가 계속 있는 것 같고 공기를 함께 느끼면서 마지막 순간에 반전을 주는 게 훨씬 마음을 후벼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찍었던 것 같아요.
우문기: 14년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집 구조가 영화에 맞게 되어 있잖아요. 감독님 집에서 찍으신 건가요?
최정열: 그건 미술 감독님 집이었는데, 이런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었고요. 어쨌든 단편영화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면서 찍는 거잖아요. 주변 사람들 집 구조를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너희 집은 어떻게 생겼니?’ 물어보다가 가장 협조적인, 영화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미술 감독의 집에서 찍었습니다. 미술 감독의 부모님 덕분에 영화를 찍었죠.
미술 감독님 이름 한 번 불러주세요.
최정열: 현식아, 제주도에서 펜션 잘하고 있지? 네가 미술 도와준 덕분에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에서도 다시 상영하고, 너무 고맙다.
이옥섭 감독님, 보경이가 붙이고 다니는 스티커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올라왔어요. 이것이 보경이가 자기의 흔적을 남기는 거고, 덕우한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거냐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이옥섭: 시나리오에 원래 그 장면이 없었는데요. 학교 다닐 때 자기애가 많아서 제가 제 공책에 얼굴을 붙이고 다녔는데, 촬영 감독님이 이거 보경이의 특징으로 넣자고 해서 넣게 됐어요. 마지막에 덕우가 붙인 거에서 씁쓸하고 마음이 아릿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잊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곳곳에 그때의 제가 있네요.
이옥섭 감독님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분께 영상편지 한 번 남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옥섭: 저도 미술 감독님. 영화에 나온 작업실이 미술 감독님 학교의 작업실이었거든요. 박 미술 감독님. 저는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데, 이 김에 잘 지내시는지 연락을 드려봐야겠네요.
지금은 다 장편 찍으시고 개봉도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때가 영화감독으로서 누가 다듬지 않은 에너지가 크실 때니까 그때 그 시절의 자기한테 해주고 싶거나 듣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우문기: 저는 다른 거 한번 해보라고. 영화 말고. 다른 걸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동 웃음)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할 것 같은데. (웃음) 그때는 영화만 할 줄 알았는데, 세상이 바뀌고 연출가로서 할 수 있는 게 여러 가지 많으니까 다양하게 시야를 넓혀 보라고. 코로나가 왔는데 할 줄 아는 게 영화밖에 없으니까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최정열: 저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요. (웃음) 그때 왜 이걸 꼭 했어야만 했냐고 질문을 던지고 싶고. 즐겁기도 하고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런 게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그런 질문을 하고 싶네요. 10년 뒤쯤에도 또 이런 질문 던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웃음)
이옥섭: 저는 너무 운이 좋게 제가 갈 수 있는 학교에 가자 해서 우연히 시작하게 됐는데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정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맞는구나 싶고. 1~2년 뒤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너무 행복했으니까. 덜 고통스러워하면서 만들어도 되는데, 되게 쥐어짜는 스타일이어서, 덜 쥐어짜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최정열: 이옥섭 감독님 영화 보면 앉은 자리에서 시나리오 써서 바로 찍고 천재적인 작품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런 천재분들도 힘들게 작업하는구나. 위안이 되네요.
우문기: 하고 싶은 말 바꿀래요. ‘세상은 천재는 많다’ (일동 웃음) ‘아카데미 가서 이옥섭을 찾아가’.
이옥섭: 보시는 분들이 너무 재수 없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영화인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그러시네요.
우문기: 참고로 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때 한 번도 된 적이 없는데. (일동 웃음) 떨어져도 계속하는 것이 힘이 된다.
그럼 대상 받으신 적 있는 이옥섭 감독님
최정열: 비행기 티켓 두 장 획득한.
이옥섭: 작업을 계속 오래 하다 보면 숙련되기 마련인데, 영화 작업은 아닌 것 같아요. 이게 장점이 있는 게 잘 질리는 스타일인데 질릴 수가 없어요. 매번 새로워서 예전에 찍은 방식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싫증을 잘 내시는 분들은 적성에 잘 맞으실 것 같아요. 늘지는 않고 처음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직업인 것 같아요.
최정열: 이옥섭 감독님께서 다 말씀하신 것 같아요. 싫증내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그리고 싫증을 내지 않고 진득한 사람한테도 적합하다. 아까 ‘시작이 반이다’라고 얘기하신 것처럼 시작하시면 되고. 저희랑은 나중에 시작하시면 현장에서 만나면 좋겠네요. 그러면 우리도 그때까지 버티고 있다는 거니까. 시작하시면 됩니다. 현장에서 만나시죠.
그럼 마지막으로 인사 말씀 부탁드릴게요.
우문기: 저도 오랜만에 예전 단편영화를 틀어주셔서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했는데, 대면을 못 하게 돼서 너무 아쉽고요. 카톡으로 온 말을 봤을 때 재밌게 보신 것 같다 어렴풋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고요. 저도 재밌게 얘기했고, 감독님들 만나서 수다 떤 것 같아서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또 이런 자리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 단편영화 몇 개 더 있거든요. (일동 웃음)
이옥섭: 아까 무대인사를 할 때 엄청 긴장됐었거든요. 지금은 저희끼리 얘기하는 것 같아서 덜 긴장이 됐던 것 같고요.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고, 훨씬 더 좋은 해석과 느끼신 것들이 정답에 가까운 것 같아서 제가 영화에 대한 설명을 잘 못 드린 것 같은데, 생각하신 게 다 맞으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일요일에 기온이 2도라고 하더라고요. 감기 조심하시고, 또 이렇게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정열: 저도 되게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고요. 항상 갇혀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이런 세상이 있는지 오랜만에 느껴서 좋았습니다. 극장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오랜만에 관객이 많은 극장을 보니까 뭉클하더라고요. 너무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감독과 관객이 직접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즐거운 웃음으로 극장 안이 충만해졌던 광화문 랑데부는 약 1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마무리됐다. ‘시네마 올드 앤 뉴: 국내감독전2’와 광화문 랑데부는 10월 16일에 만나볼 수 있다.
글: 데일리팀 유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