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기 –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 월드 시네마

 

세계적인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최근 수상작들을 만나보는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특별전이 제19회 광화문국제단편영화제에도 찾아왔다. 프랑스, 스페인, 모로코, 일본 4개국의 영화로 구성된 이 섹션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방식과 시선을 통해 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바스티앙 뒤부아 감독, <Souvenir Souvenir 기념비적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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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의 집 선반에서 유리병에 담긴 전갈을 발견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것은 할아버지가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 프랑스군 징집병이었던 시절 가져온 기념품이다. 영화는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 전쟁에 존재했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할아버지가 어린 손주에게 얘기한 알제리 전쟁은 가젤을 사냥하고 무도회를 열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만화가가 된 그는 알제리 전쟁에 관심이 생겨 그것으로 만화를 만들고자 한다.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하고자 했지만, 거부당한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최악의 전쟁을 그려낸다.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문제작으로 말이다. 이후 그는 전쟁 당시에 관한 증언집을 통해 현실과 자신의 상상이 맞닿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계속 작품을 이어간다. 영화는 전쟁 당시 상황과 참전군인이었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소재로 창작하는 것,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담겨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창작자로서 민감한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번뇌가 드러난다. 할아버지와의 소통과 갈등이라는 가족 이야기까지 더해져 다층적 이야기가 완성된다. 다채로운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선보이며 복잡한 주제를 탁월하게 전달하는 영화는 유년 시절 봤던 전갈과 비슷한 혹은 완전히 다른 ‘기념품’이 된다.

 

알바로 가고 감독, <Matria 라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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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중년 여성 라모나, 자전거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한다. 일하기 전 담소를 나누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표정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일상의 무게가 느껴진다. 라모나가 일하는 공장의 관리자는 강압적이고 포악하다. 쓰러지는 라모나의 모습을 보고도 빨리 들어가서 일하라고 독촉하며 직원들이 일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폭언한다. 딸의 부탁으로 점심시간에 손녀의 선물을 찾으러 가는 그에게 해고를 들먹이기도 한다.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먹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집에 들러 집안일을 하고 손녀의 선물을 찾은 뒤 공장에 복귀한 그에게 또 관리자의 압박이 시작된다. 남편과도 동료와도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 그는 지치는 일상을 털어낼 곳이 없다. 라모나는 혼자 오롯이 그 무거움을 지고 있다. 그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며 공장을 나선 뒤 홀로 눈물을 훔쳐낼 뿐이다. 딸과 손녀를 만나 웃음을 짓는 듯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소피아 알라위 감독, <So What If the Goats Die 염소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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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침공, 많은 사람의 상상과 두려움 속에 있는 이미지를 이 영화는 새로운 방식으로 그려낸다. 젊은 양치기 압둘라는 아버지와 아틀라스산맥 꼭대기에 산다. 압둘라는 죽어가는 염소를 위한 곡식을 포함해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향한다. 하루가 넘게 걸리는 긴 여정을 거쳐 도착한 마을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길가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한 압둘라는 그에게 마을 사람들의 행방을 묻는데, 하늘에서 사람들이 나타나 모두 떠났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온다. 그 말을 듣고 의심하던 압둘라는 그것을 보도하는 뉴스 영상을 보고는 혼란에 빠진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아버지에게 그 소식을 전하며 떠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불경한 소리라며 듣지 않는다. 이에 압둘라는 얘기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굳게 믿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면요?” 영화는 외계인의 출몰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 설정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는 사실적 이야기를 담아낸다.

 

나가히사 마코토 감독, <And So We Put Goldfish in the Pool. 그래서 우리는 풀장에 금붕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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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안에 몸을 반쯤 담근 소녀, 그는 카메라를 향해 알린다. “이것은 2012년 여름 사이타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일본 사이타마현의 어느 여름날, 한 중학교 수영장에서 약 400마리의 금붕어가 발견된다. 경찰은 전날 밤 누군가가 학교에 무단침입해 축제에 쓰고 남은 금붕어를 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그리고 수영장에 물고기를 넣은 15살 소녀 네 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은 항상 함께 어울려 다니며 쾌활한 일상을 보낸다.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로 가득한 화면은 생동감을 뿜어낸다. 그렇지만 한 소녀의 내레이션에서는 연신 “따분하다”는 말뿐이다. 작은 마을에서 갑갑함을 느끼며 새로운 것을 꿈꾸는 어린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구도의 역동적인 카메라와 속도감 있는 컷의 향연은 인물의 특성을 잘 표현하며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인물이 카메라를 직접 쳐다보지 않는다는 보편적 규칙을 깨고 관객을 향해 말을 건네는 모습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몰입감을 높인다.

 

선댄스 특별전 섹션은 총 2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선댄스영화제 수상작 특별전: 월드 시네마’ 부문은 오는 10월 17일 일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유소은

2021년 10월 16일 / In Daily News-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