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펀드 프로젝트 피칭
![데일리_대표이미지_피칭 랑데부-04](http://gisff.kr/wp-content/uploads/2021/10/20211017_051021.jpg)
갑작스레 찬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10월 16일 오후. 바깥 공기는 차가웠지만 광화문 근처의 피칭 장소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2005년부터 진행된 ‘아시프 펀드 프로젝트’가 올해부턴 ‘광화문 펀드 프로젝트’로 상호를 변경, 총 128편의 지원작이 몰렸다. 그중 사전 서류 심사를 거쳐 뽑힌 총 6편의 본선 진출작들이 이곳 현장에 모였다.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인해 간격을 떨어뜨린 의자가 배치됐다. 관객들이 체온 측정을 마친 뒤 차례로 자리에 앉았고 이내 지세연 프로그래머의 인사말로 행사가 시작됐다. 김태용 영화감독, 이상윤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 전려경 프로듀서가 심사위원으로 합류해 현장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각 감독의 포트폴리오와 이전 작품들을 미리 숙지한 뒤 전하는 물음에서 미래의 영화인 양성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6편의 펀드 프로젝트 작품들과 그에 이어진 Q&A를 공개한다. 영화의 핵심을 담은 질문과 그에 따른 감독의 답변도 덧붙였으니 재밌게 읽어주시길.
허지윤 감독, <가정동>
인천에서 살고있는 허지윤 감독은 이제는 신도시의 칭호가 더 익숙한 이곳에서 어떤 외로움의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이 될 ‘가정 3동’만은 다르다. 콜롬비아 국기가 그려진 긴 육교를 지나면 등장하는 이곳 가정 3동은 신도시로 나가 일을 마친 노동자가 돌아와 쉬는 곳이며 동시에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그는 “전작 <트레비>에 이어 이번에도 따뜻한 위로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전려경 프로듀서는 “극 중 자주 등장하는 시들을 직접 창작한 것인가”에 대한 것을 시작으로 “전작과 이번 작품을 관통하는 감정인 외로움이 이번에는 과거와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이상윤 본부장은 “초반부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더 살릴 필요성에 대해 말했으며 김태용 감독은 “외로움 이라는 감정보다 공간에 초점”이 더 맞춰진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허지윤 감독에게 가정동이란?
가정동은 어릴 적 추억이 많은 곳이다. 더불어 빨리 사라지고 있기도 해서 영화 <가정동>을 통해서 이곳을 계속 기억하고 싶다. 요즘의 신도시에 비해서 열악한 조건을 지닌 장소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소로 떠올려지길 바란다.
남서정 감독, <저는 단지 보고를>
‘사실’과 ‘진실’ 두 단어의 차이를 아니냐는 질문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남서정 감독은 “진실에는 사실에서 볼 수 없는 긴장과 두려움이 서려 있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영화의 핵심에 가닿는다. 독서부의 기부금을 끼워 둔 책을 읽어버린 주인공에게 며칠 뒤 한 친구가 책을 돌려준다. 그 안에 있던 돈 봉투는 사라진 채로. 그는 10대 소녀들이 겪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나 실상 아는 것이 없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상윤 본부장은 영화의 중심이 되는 “10대 소녀들의 감정선을 잘 드러내야 할 것 같다”는 조언을 했으며 이어 앞서 들려준 래퍼런스 만으로 그게 잘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뒤이어 김태용 감독은 이번 GISFF에 상영되기도 하는 그의 영화 <우듬지>의 연출적 탄탄함을 칭찬하며 전작을 통해 배운 점에 대해 물었다. “현장에서 배우를 디렉팅 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꼈다”는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10대 소녀들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는지.
내가 겪었던 청소년기의 답답함으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나만 이렇게 혼자 느낀 게 아니구나 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부족한 게 많은 기획이지만 이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조경원 감독,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아침 식사로 자주 즐기곤 하는 계란 프라이. 감독은 이 계란 프라이에 가끔 섞여 있는 빨간색 덩어리에 주목했다. 이것은 병아리로 부화하지 못한 흔적이라고 한다. 이를 보며 조경원 감독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예기치 못한 잔인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임을 떠올렸다. 나아가 그는 굳게 닫힌 문안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와 같은 문제를 통해 영화의 모티브를 얻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있는 미스테리한 남자 도원과 그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주인공 재아의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김태용 감독은 전작에 이어 계속해서 ‘도시호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또한 전려경 프로듀서는 “시의성이 좋다는 건 큰 장점”이나 “누가 어떻게 상처받고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의 없는 점을 질문했다. “단편 영화이기 때문에 담아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보다 “장르적으로 이해”되길 바라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경원 감독에게 도시란?
음… 월드(World)? 삶? (아침으로 계란 프라이를 먹었냐 묻자) (수줍게 웃으며) 네? 네….
엄하늘, 허기연 감독 <친절한 명자씨>
처음으로 두 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하는 작품이다. 먼저 엄하늘 감독이 무대 위에 올라 피칭을 위한 발표를 시작했다. 영화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고양이 탐정 명자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작은 갈색 고양이 사진이 PPT 화면에 계속 사용되었는데 이는 엄 감독이 직접 기르고 있는 고양이 ‘노을이’였다. 몇 해 전 시설에서 입양해 왔다고 했다. 장내에 소소한 웃음이 번졌다.
이어 허기연 감독이 무대에 올라 함께 질의응답을 받았다. 이상윤 본부장은 “유쾌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포트폴리오를 보니 달라 보인다”고 평가했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소 안정적으로만 끌고 간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전려경 프로듀서는 “만화적 터치가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김태용 감독은 “공동 연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 기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으며 질문을 마쳤다.
엄하늘, 허기연 감독에게 고양이란?
(엄 감독) 오 년을 함께한 친구?, (허 감독) 키우고 있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가지고. 내게 고양이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상민 감독 <신들린 밤>
유쾌함으로 가득 찼던 발표였다. 찍은 지 오래된 것 같은 결혼식 사진 한 장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행복해 보일 것만 같은 사진을 잔뜩 확대하며 이상민 감독은 말한다.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의 공포”가 될 수 있지 않냐고. 수진과의 결혼을 앞둔 기정은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귀신을 설득 해야 한다. 그 귀신은 바로 수진의 장모.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귀신 장모의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을까?
이상연 본부장은 “연출적 야망을 드러내기 위해 굉장히 진지한 톤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믹이란 장르적 색채”를 과감하게 사용한 지점을 높게 평가했다. 뒤이어 전려경 프로듀서는 전작 <돌림총>의 기획 의도에 대해 물었으며 동시에 “단순히 웃기 즐기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영화 속에 담겨 있는가 질문했다.
이상민 감독에게 군대란?
음… 잊을 수 없는 기억?
김민성 감독 <휴식클럽>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영향받아 김민성 감독은 <휴식클럽>을 구상했다. 탑차의 짐칸을 보금자리로 쓰는 남자는 고속도로 앞에 있는 졸음쉼터에 차를 대고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을 당시 김 감독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그저 살아가는 <월든>의 이야기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책을 통해 느꼈던 “그냥 사는 게 뭐가 문제인가”라는 감정과 편안함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상연 본부장은 앞선 때와 마찬가지로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전체적으로 극성이 낮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평했다. 또한 김태용 감독은 래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는지를, 전려경 프로듀서는 “실사 영화에서 발표 이상의 감흥을 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민성 감독에게 졸음쉼터란?
지친 마음이 잠깐 쉴 수 있는 곳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고속도로란?) 내 본가가 창원이다. 이제 곧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 곧 만나야 하는 곳이다.
글: 데일리팀 박수진
사진: 데일리팀 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