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말하다. – 국제경쟁6

 

국제경쟁 6 섹션의 영화는 현재 사회를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Horacio 호라시오>, <Frimas 프리마>는 각각 범죄를 다루는 방식, 여성의 신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임신 중절에 관한 제도를 보여주며 사회 시스템을 지적한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를 비롯한 문제적 문화를 <Sisters 자매들>에서, 다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사회적 결점을 <Grab Them 그랩 뎀>에서 만나볼 수 있다. <In Flow of Words 말의 흐름>은 뒤틀린 사회에서 비롯된 비극적 참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캐롤라인 쉐리에 감독, <Horacio 호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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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하고 따뜻한 어느 날, 집 뒤편 정원에서 기욤은 호라시오를 살해한다. 살인 동기는 그가 계속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은 기욤에게 호라시오가 계속 소리를 질렀고, 소리치는 사람이 싫다는 이유로 기욤은 호라시오를 때리고 또 때렸다. 기욤에게 호라시오의 죽음은 단지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람이 없어 고요해진 상태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8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는데, 어떤 동요도 없다. 기욤은 어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의 엄마는 ‘살인자의 엄마’라 불리는 걸 즐기는 듯하다. 감옥 안에서는 배우는 것 하나 없이 그저 잊어버리기만 한다. 자기 자신을, 자신이 지내던 환경을, 자신의 주변 사람을 하나씩 잊어간다. 그리고 그는 호라시오를 살해한 이유마저도 망각한다. 어떤 반성도 더해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느껴지는 끈적한 불쾌감은 출소 이후에도 이어진다. 기욤은 엄마의 말이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지고, 호라시오 죽음의 이유를 오래전에 잊은 그는 순간 이성이 툭 끊어진다. 영화는 잘못을 성찰하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또다시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을 그의 시점에서 보여주며 사회 시스템을 지적한다. 사회가 범죄자에 대응하는 방식과 감옥의 기능이 과연 범죄자가 개과천선할 기회를 만들어주는지, 그저 가둬놓기만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모르간 쥘라프티 감독, <Grab Them 그랩 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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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살의 여성 샐리는 진정으로 사랑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의 일상은 타인의 시선으로 고통에 시달린다. 그 시선은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점점 짜증과 불만으로 차올랐다. 사람들이 그렇게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부터다. 샐리가 대통령과 꼭 닮은 외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Grab Them 그랩 뎀>은 실제와 거짓을 넘나드는 유쾌한 영화다.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관한 것을 만들고 싶었던 감독은 딥페이크 기술을 사용해 트럼프와 높은 일치율의 얼굴을 만들어냈고, 다큐멘터리 형식을 사용해 더 사실적으로 관객이 샐리와 만나게 했다. 샐리는 남편과 회사 사람, 행인에게마저 자신의 행동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 샐리는 영화의 끝에서 관객에게 얘기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가지고 너무 냉정하게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마리안느 팔리 감독, <Frimas 프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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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거리에 나온 젊은 여성 카라가 불안한 모습으로 무언가를 기다린다. 이어 그의 앞으로 화물차 한 대가 접근하고 그는 암호를 말한 뒤 화물차 뒤에 탑승한다. 그곳은 이동식 불법 임신 중절 클리닉이다. 임신 중절이 다시 범죄가 된 미래의 캐나다 사회. 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불법 임신 중절 수술을 받는다. 클리닉은 도축을 마친 동물의 살덩어리가 매달린 곳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수술대가 있는 끔찍한 광경이고,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차가 이동하는 동안 수술이 이뤄져 위험천만하다. 열악한 조건이지만, 어렵고 막막한 현실에 처한 카라에게는 그마저도 절실하다. 단속을 나온 경찰을 피해 숨고, 덜컹거리는 차의 충격을 참아내고, 돌발상황을 넘기며 그는 겨우 임신 중절 수술을 마친다. 수술이 끝난 카라의 얼굴엔 슬픔과 공허함, 복잡한 심경이 걸려있다. 카라는 클리닉을 찾은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는 의사에게 남편이 ‘생명 존중파’라고 말하는데, 의사는 이를 듣고 ‘생명 존중’이 아니라 ‘낙태 반대’인 거라고 지적한다. 정작 여성의 신체는 소외시키면서 생명 존중을 이유로 임신 중절을 반대한다는 이들의 모순을 꼬집는 것이다. 영화는 임신 중절 문제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되는 현실의 문제를 보여주면서 여성의 몸에 중점을 두고 임신 중절 문제를 논해야 함을 말한다.

 

엘라인 에스터 보츠 감독, <In Flow of Words 말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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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하는 통역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범죄를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내 역할은 보이스오버일 것 같다”는 한 인물의 말처럼 그들은 다큐멘터리의 진술자로 등장한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통역사는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중립을 유지한 태도로 말을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섞어서는 안 된다. 영화는 그러한 이들의 시선과 언어로 비극적 역사를 재현한다. 이는 피해자들을 직접 등장 시켜 피해 당시 기억을 계속 더듬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거나 피해자를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생생한 진술을 확보하는 방식을 선보인다.

 

카타리나 리세크쿠클라 감독, <Sisters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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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작은 마을. 진보적 유럽과 보수적 중동 사이에 있다는 위치적 특성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그곳에 세 명의 자매가 산다. 그들은 가부장적 사회 안의 여성이자 구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소외당하는 약자의 위치에서 그들은 스스로 사회를 벗어나려고 한다. 자매에게 그들이 사는 환경은 “아무 일도 안 생기는 시궁창”으로 느껴질 뿐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십계명을 정해 살아간다. 가슴을 압박붕대로 감아 숨기고, 품이 큰 회색 옷을 입고, 복싱을 연습한다. 남성과 몸싸움이 붙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맞선다. 그들의 노력에도 온갖 폭력적 상황에 상처 입는 일이 생기지만, 자매는 서로 의지하고, 우연히 만난 트랜스 여성과 연대하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나아간다. 영화는 빛과 색을 이용한 연출을 탁월하게 보여주는데, 회색빛의 도시와 회색 옷을 입은 자매들을 통해 슬로베니아의 현실을 담아내고, 네온 조명을 이용해 감각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국제경쟁 섹션은 총 8개로 나눠 상영된다. 이 글에서 소개한 ‘국제경쟁 6’ 부문은 오는 10월 18일 월요일에 만날 수 있다. 온라인 예매는 씨네큐브, YES24에서 할 수 있으며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

글: 데일리팀 유소은

2021년 10월 17일 / In Daily News-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