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프 클래스: 시나리오를 들여다보다
올해 AISFF에서 새롭게 준비한 ‘아시프 클래스’는 젊은 영화인들이 궁금해할만한 주제를 가지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패널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도록 만든 시간입니다.
올해는 <매력적인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상윤 CGV 아트하우스 사업담당, <더 테러 라이브>의 전려경 프로듀서,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이 지세연 프로그래머와 씨네마 클래스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형식으로 꾸며졌습니다.
1. 1년에 몇 편의 시나리오를 보시나요?
이상윤) 저는 지위가 높아져서 (웃음) 예전에는 꽤 많이 봤었는데, 요즘에는 일주일에 3편정도 봅니다. 투자팀 직원들은 7-10편정도 봅니다.
전려경) 저는 기획 제작 시나리오를 보기도하고, 동료 시나리오 리뷰도하고, 심사를 보기도 합니다. 보통 일주일에 3작품 정도 보는 것 같습니다.
한준희) 저는 두 분에 비해 비교적 다른 시나리오들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닙니다. 일주일에 1-2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습작 쓸 때는 영화관가서 영화보고, 시나리오까지 보고해서 정말 많이 봤었던 것 같습니다.
2. AISFF에서 심사를 하셨는데, 후보작을 고르는 판단 기준이 뭔가요?
한준희) 글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장점이 확실한 작품들을 주로 선정하려고 했습니다.
전려경) ‘얼마나 창의적인가’, ’얼마나 논리적인가’,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주로 봅니다. 창의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아도 매력적인 작품들이 있는데, 매력이라는 것이 개인적일 수는 있지만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단편 시나리오를 쓸 때, 특정 부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쓰기를 조언하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준희) 단편도 기승전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얼마나 관객들에게 재밌게 보여질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단편을 쓸 때는 먼저 내가 뭘 보여주고싶은지, 무슨 이야기를 찍고 싶은지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려경)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걸 얼마나 잘 아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편을 찍을 때는 본인이 좋아하는 소재나 질감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라는 생각이 들고, 어쩌면 단편을 만들 때는 그런 부분들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상윤) 저희 투자배급사도 신인감독의 시나리오를 볼 땐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하는 단편을 체크합니다. 단편이기 때문에 ‘연기나 컨티뉴이티에서 약간 부족하다고 해도, 단편에서 이 정도는 용납될 수 있지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저는 단편은 실수를 할 기회조차 용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프로듀서님이나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단편은 상업을 목적으로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단편을 만들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4. 잘 읽히는 시나리오와 잘 읽히지 않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상윤)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투자배급사 입장에서 말씀 드리자면 뚜렷한 주인공, 명확한 갈등 등 초반 셋업이 잘되어있는 시나리오가 잘 읽힙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정표현이나 지문이 너무 많은 시나리오는 리딩 속도를 떨어트려 읽는 데 지루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전려경) 기획자입장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컨셉과 설계가 잘 되어있는 시나리오를 좋아합니다. 짧게 말해, 포스터가 떠오르는 영화를 픽업하는 편입니다. 문체나 대사, 어느 특성 장면에만 집착하는 시나리오는 잘 안 읽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글을 읽을 때는 이 영화를 왜 만드느냐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상윤) 참고로 투자사는 시나리오를 보다가 관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웃음)
한준희) 저는 지문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형식은 그저 스타일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단편이라고 한계를 두기보다는 배우가 ‘진짜 연기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좋지않을까라는 생각합니다.
5. 시나리오를 쓰다가 막혔을 때 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준희) 이 질문이 제일 단골인 것 같은데 (웃음)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 막히면 될 때까지 앉아서 버티는 편입니다.
전려경) 신인감독이랑 작업을 할 때에는‘이 영화를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려는 지’ 정리하고 시작하라고 조언합니다. 글을 계속 쓰다보면 다른 길로 가곤 하는데, 그 때 다시 어떤 인물사건배경을 쓰려고 했는지 확인하면 초심으로 가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구체적인 목표를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글을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보다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까 상상하면서, 줄콘티를 읽는듯한 느낌으로, 어떤 연출을 할 지 생각하면서 적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윤) 진단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모니터링 그룹을 돌리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객관적으로 자기 시나리오의 약점이나 잘못된 틀의 근본적인 부분까지 들여다 보는게 가끔은 객관화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전려경) 그래서 저는 좋은 파트너이자 친구인 제작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준희) 저도 정말 동의합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왜 안 좋은 지 얘기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도록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려경) 좋은 시나리오를 많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되기 위해 만든 글로, 소설이나 만화, 드라마, 웹툰과는 호흡이 다릅니다. 어떻게든 좋은 시나리오를 많이 구해서 읽고, 영화 시나리오 포맷에 대한 공부를 하시는 게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준희)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시나리오 필사를 많이 했습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 보면서, 내가 이 영화의 작가나 감독이라면 어떻게 했을 지 지문도 써보고 대사도 써보고 20번 정도 써본 것 같습니다. 너무 긴 장편이 힘들다 싶으면 (저는 안 해봤지만) 단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세연) 감독님은 어떤 감독의 작품을 필사하셨나요?
한준희) 봉준호 감독님을 좋아해서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은 다 필사한 것 같습니다.
7. 추천하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준희) 고전 한국영화중에 클래식하고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짝코> 같은 임권택 감독 영화들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려경) 작년에 읽은 시나리오 중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밀정이었습니다. 밀정의 플롯팅이나 대사, 설정모두 좋았습니다. 또, 이창동감독님의 모든 시나리오도 추천합니다. 지문이 거의 없는데도 인물의 감정이나 움직임이 다 전달되는 아주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윤) CJ 기획개발에서 스터디한 작품이 있습니다. 플롯에서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인데, 바로 과속스캔들입니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3막구조에 거의 빈틈없이 맞는 작품으로, 캐릭터, 씨뿌리기와 거두기, 암시, 시간 배분, 클라이막스를 만드는 방법까지 거의 완벽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본 작품으로는 아직 구하기 힘드시겠지만 내년에 개봉하는 <남한산성>도 좋았습니다.
8. 한준희 감독님은 어디서 동기를 얻으시고 시나리오를 만드시나요?
한준희) 어떤 감독들은 뉴스를 보면서 많이 따온다고 하는데, 저는 어떤 한 부분이 어떻게 매력적인가에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아름다워>가 만들어질 당시 나치는 굉장히 금기시되는 주제였는데, ‘이런 주제를 가지고 밝고 경쾌한 코미디를 만들거야.’라고 생각하는 등의 발상의 전환도 좋다고 생각하고, 본인이 직접 겪어본 자기 일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늘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이템들을 메모하는 습관도 감독이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현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군의 영화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90분 동안 시나리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에 꿈을 두고 있는 예비 영화인들을 위한 아주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 : 데일리팀 정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