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심사단 리뷰 #4
![%ea%b4%80%ea%b0%9d%ec%8b%ac%ec%82%ac%eb%8b%a8%eb%a6%ac%eb%b7%b0%ec%8d%b8%eb%84%a4%ec%9d%bc](http://gisff.kr/wp-content/uploads/2016/11/20161107_071051.jpg)
1. 르 뿔뒤의 곰들
백발의 노인과 반백의 신사가 르 뿔뒤의 해안을 따라 걷는다. 늙은 아버지와 늙은 아들이, 두 아버지가, 그리고 가족 앞에선 미련하리만큼 굳센 두 곰이 나란히 걷고 있다.
빛 바랜 사진 속 4살의 아들과 젋었던 아버지는 이제 50대 중년의 남자와 양로원으로 이사를 가는 노인이 되었다. 이들이 도착한 바다는 사진 속 르 뿔뒤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기억하는 서로는 아직 그대로이다. 아장아장 걷던 아들의 걸음이 어느새 늙은 아버지의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와 많이 닮았고 불뚝 튀어나온 아들의 배는 늙은 아버지의 배와 많이 닮아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을지라도 바다에 뛰어드는 아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고 지친 아들에게 넓은 어깨를 내어주는 아버지의 마음 또한 변함이 없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이 오자마자 낡은 가족사진을 꺼내 본 데에는 사춘기의 아들을 둔 중년의 아버지가 아닌 삶에 지친 한 아들로서 어린 시절 한없이 굳세 보이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서였으리라. 몸은 약해졌을지라도 변함없이 자신에게 듬직한 어깨를 내어주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헤아릴 수 있는 아들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신이 그리워했던 것은 르 뿔뒤에서의 추억이 아닌 아버지의 넓은 어깨였음을 깨닫는다.
글 : 관객심사단 박재인
2. 세이드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영화
‘세이드’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녀의 곁엔 설원을 같이 내달리기도 공허한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 말 한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혼 지참금을 위해 무리하게라도 말을 팔아버리려는 가족은 세이드가 살고 있는 설원보다도 더 차갑기만 하다. 그녀를 교육하기보다 차라리 일찍 결혼시키는 것이 좋다 판단한 가족들을 세이드는 미워할 수 없다. 가정의 행복과 자신의 행복 둘 중 어느 것도 선뜻 선택할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취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날아온 낯선 영화 <세이드>는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영화다. 세이드에게 닥친 갈등과 그에 따른 그녀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낯선 지역에서 온 이 영화를 친숙하게 느끼게끔 한다. 가족의 행복이 나의 선택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때의 결정은 너무나도 고민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족을 위해 ‘나’라는 욕심을 때때로 버려야만 한다는 것 역시. 타국의 우리가 세이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인간의 감정은 만국 공용어로 작용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이드>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한 소녀의 익숙한 삶은 온통 낯선 것들의 위로 올라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베니스, 런던, 선댄스, 오버하우젠 등 10개의 국제 영화제를 돌아 이번 아시프의 스크린을 찾은 <세이드>는 당신에게 차갑지만 따뜻한, 아련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글 : 관객심사단 이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