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심사단 리뷰 #5
![%ea%b4%80%ec%8b%ac%eb%8b%a8-%ec%8d%b8%eb%84%a4%ec%9d%bc](http://gisff.kr/wp-content/uploads/2016/11/20161108_030718.jpg)
1. 첩첩산중
영문 제목 ‘infinite loop’, 컴퓨터 용어로는 결코 종료시킬 수 없는 데이터 처리를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끊임없는 연결 고리’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인과론을 연상시키는 영어 제목처럼 영화는 다소 복고적이고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느닷없이 전형적인 기독교 라디오 방송의 설교로 시작된다. 마태복음 7장 22절 , ‘ 심판 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며 …… 누구든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마치 이 구절을 증명하는 한 편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다.
장소는 첩첩산중,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공간, 일면식 없던 세 남자의 만남은 우연적이지만 사건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인과성이 있다. 우연과 필연의 중첩, 인과응보, 나비 효과 . 카메라는 첩첩산중의 하늘과 인물의 행동을 주시하는 시선을 롱샷으로 포착한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공간따위는 없다. 인물간의 직접적인 대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철처히 서로에게 낯선 자일 뿐이다. 지게꾼의 유일한 대사도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전언에 불과하다. 영화에 존재하는 언어는 라디오 방송과 자살한 자의 유서가 전부이다. 인간적인 유대가 상실된 현대의 의사소통 방식의 단면이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타인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나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손쉽게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존재이다. 왜냐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영화 속 공간인 첩첩산중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주인공은 평범해 보이는 중년의 사내다.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현장에서 덤덤히 밧줄만을 회수할 뿐이다. 다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본능적으로 그를 구한다. 이는 자신이 전도된 상황에 빠졌을 때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러나 돈가방 , 자신의 이해 관계가 개입되면서 선행은 쉽게 번복된다. 돈을 갖기 위해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익명의 타인은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처럼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본능을 갖고 있다. 다만 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주는 희망과 절망은 교차한다.
글 : 관객심사단 이호금
2. 락버스터
모든 것은 커피로부터 시작되었다. Joost은 셔츠에 흘린 커피를 닦으려고 들어간 다용도실에 갇혀버린다. 평범한 일상에서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한 번의 해프닝일 수 있었다.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가 회사에서 몰래 보고 있던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부터 잠시 일상을 벗어난 그의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내 상사에게 그 모습을 들켜 버린다. 역시 일탈은 그에게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화이트로 칠해진 벽, 나란히 줄지은 컴퓨터, 비슷한 복장의 직원들의 모습은 정말 재미없어 보인다. 주인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다들 휴가로 들떠 집에 가는데도 혼자 남아 일을 한다. 하지만 다용도실의 손잡이가 떨어져나갔을 때, 그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을 기다려왔을 지도 모른다.
Joost는 다용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활용하며 원맨쇼를 펼친다. 카메라는 좁은 다용도실에서 여러 각도에서 그를 관찰한다. 위기에 처한 액션 영화 속 주인공을 제대로 패러디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그는 역시 어설펐고 그로 인해 웃음만 더 유발할 뿐이었다. 특히 환풍구 속을 러닝 셔츠 차림으로 기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를 떠올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영화의 시작에서 폭발을 배경으로 걸어오는 액션 영화 속 남자, 잡지 표지의 암벽등반가, 서핑보드와 자전거를 들고 퇴근하는 동료들. 어쩌면 모두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언젠가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을 기대할지도.
록버스터는 블록버스터에서 B만 뺀 단어이다. 블록버스터가 되기엔 조금, 아니 많이 부족한 주인공의 모습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하지만, 오히려 많이 부족한 그의 모습이 우리를 웃게 하고, 우리에게도 언젠가 일어날 그 순간을 기대하게 하는 것 같다.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어떻겠는가. 우리에겐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록버스터인 것을.
글 : 관객심사단 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