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다큐멘터리 속 ‘현실’
![20181103_120641](http://gisff.kr/wp-content/uploads/2018/11/20181103_120641.jpg)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는 매년 다양한 장르의 단편영화 장이 열린다. 특히 올해 국제경쟁부문에서 수는 적으나 작품성이 우수한 단편 다큐멘터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단편과 다큐멘터리의 만남은 어떠할까. 시작과 끝이란 구분 없이 연속되는 현실 속, 단편으로 전달하고자 한 현실의 모습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들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세상과 그들이 느꼈던 감정이 짧고 굵게 집약된 단편 다큐멘터리 세 편을 소개한다. 파비우 세이슈의 <Fail Delete 실패, 삭제>, 마크 올렉사와 프란체스카 스칼리시의 <Black Line 블랙 라인>, 그리고 요한 팔므그렌의 <The Traffic Separating Device 차량 분류 장치>에 대해 살펴보자.
1. Drag Queen이 사진으로 전하는 말 _ 파비우 세이슈 <실패, 삭제>
사진은 때론 말보다 강력한 언어가 된다. 군중 속 카메라를 숨긴 채 활동하던 브라질 사진작가 베토 페고, 거울 속 너머 화려한 나르시시스트 드래그 퀸 베티나 폴라로이드로 다시 태어난다. 카메라 렌즈 뒤에 숨어지내던 지난 날을 벗어 던지고, 드래그 포토그래퍼 베티나 폴라로이드는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서 자신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긴다. 본인의 드래그 퀸 모습을 폴라로이드로 남기며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시도하는 베토 페고는 작품뿐만 아니라 베티나 폴라로이드 자체 또한 드래그(drag) 예술의 일부로 여긴다. LGBT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하는 그의 모든 작업 과정은 성소수자의 자유를 향한 외침이자 그들을 억압하는 힘에 대한 저항이다. 그의 사진은 단순히 기록의 기능을 넘어섰다.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을 해방시키는 것. 그리고 사회와 세상을 향해 본인의 존재를 알리고,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그의 사진이다. 사진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언어에 영감을 받은 <실패, 삭제>는 드래그 예술과 세상의 모든 언어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2. 오염된 자연 속 남겨진 사람들 _ 마크 올렉사, 프란체스카 스칼리시 <블랙 라인>
방글라데시의 맹그로브 숲인 Sundarbans 지역. 한 여자가 혼탁한 물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매우 일상적이고 특별함이 없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가 낚시를 하기 위해 들어간 강은 얼마 전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해 오염된 곳이다. 방글라데시의 Sundarbans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맹그로브 숲 연안이며 생태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2014년 9월,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강가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지역 원주민에게 이는 재앙 그 자체다. 정부는 사고 수습에 손을 놓았으며, 오일 회사는 지역 원주민들에게 기름을 모아오게 했고 기름의 양에 따라 돈을 지급했다. 약 1,000여 명이 보호장비 없이 강에 들어가 기름을 모았고, 그들은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수거 기간이 지난 후, 원주민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 그 물을 마시고 사용하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은 변하지 않은 채.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감독은 곧바로 이 곳으로 향해 이 영화를 찍었다. 영화 제목인 ‘블랙 라인’은 기름 유출 사고 이후 해안가에 생긴 수백 킬로미터의 지워지지 않는 기름 흔적을 의미한다. 공동 감독 프란체스카는 한 인터뷰에서 “이 블랙 라인은 두 세계를 구분하는 의미를 지닌다. 매일 생존을 위해 싸움을 치러야 하는 자들의 세상, 그리고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의 세상을 구분짓는다.”라고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부와 사고를 일으킨 회사가 떠난 곳에서, 아무 잘못 없는 원주민과 동식물만이 남아 생존을 위한 싸움을 계속한다.
3. 우스꽝스러운 혼돈의 상황 _ 요한 팔므그렌 <차량 분류 장치>
스톡홀롬 도심 한가운데, 매주 수백 대의 차량이 파손되는 혼란이 벌어진다. 사건은 시 의회가 Slussen으로 이어지는 버스 전용 진입로에 일반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트랩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Slussen 환승센터는 여러 교통수단이 모여 있어, 그곳으로 진입하는 길은 항상 교통이 복잡하다. 따라서 그 길이 낯설고 안내 표지판조차 보지 못한 여행객과 외부인의 차량 수백 대가 트랩에 빠져 타이어가 터지고 만다. 시 의회의 결정엔 이유가 있다. 원래는 해당 구역에 배치된 교통 관리인이 일반 차량의 진입을 막거나 버스 진입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몇몇 화를 내는 운전자들이 관리자를 위협하자 트랩을 설치한 것이다. 문제는 트랩으로 파손되는 차량의 운전자는 그들이 아닌 트랩의 존재를 모르는 여행객과 외부인 혹은 노인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안내표를 발견 못하거나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경로를 따라왔을 뿐인데 이러한 낭패를 겪는 것이다.
차량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안내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트랩을 설치한 시 당국의 결정에, 예상치 못한 이들이 피해를 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차량 분류 장치>는 이러한 아이러니하고 우스꽝스러운 혼돈의 상황을 유쾌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시 의회와 차량 운전자들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이 상황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또한 스웨덴 당국에서도 보도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실패, 삭제>, <블랙 라인>, 그리고 <차량 분류 장치> 경쟁부문에 출품된 세 편의 다큐멘터리 단편을 살펴보았다. 이들이 각자 주목하는 세상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다큐멘터리에는 단순히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사람의 시각이 담겨있다. 짧지만 굵직하게 전달되는 그들의 시각과 메시지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위에 소개된 각 영화는 제16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상영시간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의 상영시간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