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이름의 상영관
AISFF의 영화들은 단편이기에 6편 이상의 작품이 한 섹션으로 묶여 상영된다. 이 여러 편의 상영작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선택하면 어떨까? 내가 선택한 영화들이 묶여 상영될 때 그 앞에는 선택자인 나의 이름이, 혹은 선택의 기준이 된 단어가 새겨질 것이다. 선택의 기준이란 주제도, 인물도, 장면도, 배경 혹은 사건도 될 수 있다. 여러 타임의 상영작을 관람하신 ‘관객심사단’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영작에 대한 열띤 토론을 마친 후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해주신 심사단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관객심사단들의 관람작과 인상 깊었던 영화들의 주제, 그리고 영화 이야기까지 함께 들어보자.
저는 ‘뉴’라고 하고 싶다. <실패, 삭제>, <최후 개체>, <더 이상 돈을 걸 수 없습니다>, <나 홀로>를 한 상영관으로 묶고 싶다. ‘뉴’라고 선택한 이유는 네 개 작품이 각자의 새로운 시작과 끝이 맞물린 지점을 잘 다룬 것 같아서이다. 이 단어로 하나의 섹션을 만들고 싶다. 이 영화들 속 인물은 ‘뉴’라는 단어와 캐릭터가 어우러진다. 그중 자극적이면서도 두드러진 한 명을 고르자면, <실패, 삭제>의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로의 새로운 시작을 해가는 이야기이다. 과거에 남자였던 자신을 삭제하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기에 끝과 시작이 가장 맞물려있는 존재라고 보였다. 그 존재 자체로 성립되는 자신만의 메이크업이라는 언어로서 표현되는 게 좋았다.
– 관객심사단 김별
상영의 키워드는 과거에 있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들이라는 주제이다. <무중력>, <새벽이 오기 전에>, <찾을 수 없습니다>, <최후 개체>까지 4개 작품이다. 아무래도 영화들의 대체적인 경향이 사회적 면모를 담으면서 시의성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주목한 작품들이라고 생각했다. <새벽이 오기 전에> 라는 작품이 개인적 취향이어서 가장 와닿았는데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은 여자가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지막 장면이 영화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슬픈 감정을 확산하는 방법을 한순간에 역전시켜주는 것이 나온다. 어떤 상처로 인해 슬픈 감정들이 영화를 지배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역전하고 회복되는 영화적인 지점들이 기억에 남는다. 여담으로는, 영화 원제는 불어이고 영어 제목은 Be For Down이다. 원제는 아이리스, 새벽을 연다는 의미인데 나의 상영관에 이름을 붙인다면 원제 그대로도 좋을 것 같다.
– 관객심사단 표국청
<탄력적 계약>, <준비가 됐건 안됐건>, <더 테이프>, <우리 자신들만의 결합>. 이렇게 네 개 작품을 함께 상영하고 싶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영화들이다. 이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인상 깊다. 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라고 확실하게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연결성에 있어서 잘 이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상영된다면 관객들이 좀 더 이 섹션을 보면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의도한 바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의성이 짙고 주제가 명확하면서도 은유적이며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국제경쟁 3의 영화들을 좋게 봤다. 그 영화 중 한 장면이 떠오른다. <준비가 됐건 안됐건>에서는 덤프트럭을 타고 간다는 것에서. 너희 먹고 싶은 걸 다 먹어-라고 하면서 떠나는 길은 돌아올 수 없고, 마약중독자이던 부모들이 아이들을 판다는 것. 그 배경을 어렵지 않게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엔딩 크레딧에 보면 인신매매는 두 번째로 큰 사업이라고 설명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것과 더불어 덤프트럭을 타고 간다는 것. 의미를 관통하는 장면 연출이 좋았다. 그 배경이 둘러싼 엮임이 좋았다.
– 관객심사단 김지원(4624)
유난히 눈에 띄었던 작품들의 주연은 아역배우였다. 영화는 세상을 담는 창이다. 그 안에 아이들이 나온다는 것은 앞으로 영화계의 발전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체구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렬했고 아역 배우라는 어린 시기와 함께 이끌어 나가는 게 좋았다.
앞으로 펼쳐질 프레임이 기대된 작품이 많았다. <아역배우 박웅비>, <제제>, <준비가 됐건 안됐건>, <까마귀 소녀>, <전기 사자의 여름>이다. 나의 상영관은 아역배우들이 주연이다.
또한 <김희선>이라는 작품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한 컷만 누군가에게 남아도 그 자체로 성공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그 한 컷이 남아있어도 그것은 가치가 있다. 주된 이야기는 ‘김희선’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아빠가 그 이름을 지은 이유를 말해주고 그 이름이 좋다고 말하며 아이는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이 장면이 인상 깊었다. 비로소 희선이가 그 이름을 좋아할 수 있도록 말해주는 장면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가 배경이기 때문에 나만의 고유함을 확립한 느낌이 들었다.
– 관객심사단 백승해
<탄력적 계약>, <더 컬처>, <성인식>, <환불> 네 개를 묶고 싶다. 아무래도 20대 초중반인 취업 준비생이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가 돋보였다. 취업이라는 사회에 노출된 젊은이들에게 공감이 가게 됐다. 주제의식이 관통되는 이야기들이다. <탄력적 계약>은 계약직 인생에 대해 씁쓸하게 나타내는 프랑스 영화이다. 한 나라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더 컬처>는 주인공이 연주 회관의 직원이다. 이 사람은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치고 싶어 하고 관심도 많다. 그런데 직원이다 보니 기회를 얻지 못해 기회를 위해 찌질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자신이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았다. 더불어 청년들을 위한, 그들을 일깨워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식>, <환불>은 누가 봐도 취업 준비생들의 이야기이다. 이 네 개의 영화들은 자신의 꿈이 있는 젊은이들이 오면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고 청춘에 대해 관철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자아,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 관객심사단 이아영
영화들을 주제를 통해 묶는다면 그 타이틀은 ‘음복’이다. 죽음을 다루는 영화들이 많지만, 음복이라는 것을 붙임을 통해 부여하고 싶은 성격들이 있다. 우리가 음복을 하는 것은 죽음이 발생했을 때 그 뒤에 음식을 나누며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삶에 대한 지혜를 영양분으로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황정민의 유명한 수상소감에서 영화는 잘 차려진 정성스러운 밥상이라라는 말에 동감하기도 했다. 영화가 가진 삶의 의미들이 묶였으면 한다. <무중력>, <마지막 날>, <새벽이 오기 전에>,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으로 네 작품을 모으고 싶다.
<무중력>이라는 작품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가 트램펄린 위에서 나누는 대사가 있었다. 어쨌든 삶은 죽음으로 인해 달라졌지만 이 달라진 상태에서도 지속되는 삶이 대사 속에서 응축되어 있었다. 트램펄린을 다른 집에 넘겨주기로 했어-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웃으면서 그것은 자신의 운동 용도였다고 그 물건에 관련해 아이와 함께했던 추억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며 자신의 삶이 지속됨이라는 것을 트램펄린이란 매개체로 연결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 ‘음복’과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는 지점에서였다.
– 관객심사단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