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SFF2018 시네마 토크
11월 4일 문호아트홀에서 ‘전지적 단편 시점 : 단편영화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시네마 토크가 진행되었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가 사회를 보고 패널로는 ㈜인디스토리 대표 곽용수, 영화감독 이란희와 이한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모은영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독립영화배급사인 ㈜인디스토리의 20주년을 맞이해 열린 이번 시네마 토크에서는 아래의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1) 패널들이 뽑은 좋은 단편
#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
이한종 : 제목인 ‘가리베가스’는 가리봉동과 라스베가스의 합성어다. 2005년도 작품으로 그 당시 우리가 처한 환경과 가리봉동의 현실을 감독 본인의 의식을 담아 치열하게 묘사했다.
상영당시 GV에서 내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여주인공이 떠나는 트럭에서 숟가락이 떨어지는데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가?”하고.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그냥 촬영할 때 떨어진 거라고 말씀 하셨다. (웃음) 바로 그게 가리베가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란희 : 감독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 등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영상으로 구현해냈다. 그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영화 엽서를 구매해 두고두고 보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했다.
# 김종관 감독의 <폴라로이드 작동법>
모은영 :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회자 되며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단편이라는 형식 속에 감정의 응축, 시적인 분위기를 담아내 선정하게 되었다.
이은선 : 김종관 감독이 처음으로 찍었던 부모님의 사진이 영화에 들어갔는데 개인의 사유에서 출발한 작품이라 정서가 더 풍부하게 표현된 것 같다. 인물의 표정 변화에 주목하고 정유미라는 배우를 발굴해내 더 의미있다.
#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
이은선 : 사회의 부조리와 엇박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봉준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다시 단편을 보면 그의 정수가 다 단편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블랙 코미디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며 이야기에 대해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 이정홍 감독의 <해운대 소녀>
모은영 : 어떤 감정과 순간을 포착해 더 깊은 여운을 준 것 같다. 최근 단편 같은 경우 너무 친절하고 설명식의 작품이 많아 아쉬웠다. 그에 비해 이 작품은 반전의 힘을 잘 다뤄 계속 기억에 남는 작품인 것 같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인데, 러닝 타임이 고작 5분이라 과연 이 작품이 상을 타도 되냐며 의아해했던 관객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2) ㈜인디스토리 곽용수
감독들은 본인의 작품이 유통되고, 관객들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바람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한국 영화계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어서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던 것 같다. 그 이후로못 빠져나와서 20년간 일하고 있고.(웃음) 감독들이 원하는 건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일인데, 그렇게만 하기 어려우니까 ’KBS독립영화관’ 등의 방송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다. 또 쇼케이스, 수요단편극장을 통해 소개하기도 했었고, 단편과 장편을 묶어 장편영화 상영 전에 단편을 보여주는 방식을 고민하기도 했다.
3) 최근 단편의 경향, 필름메이커에게 해주고픈 말
이한종 : 10년간 3편의 단편을 만들었는데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스탭과 배우들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거다. 제작비가 적어 페이도 얼마 드리지 못하는데 보답하는 방법은 이 영화를 통해 커리어를 만들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고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스탭끼리 끈끈해지는 점은 있는 것 같다.
이란희 : 단편영화들은 제작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제작지원이 없으면 안 된다. 공식적으로 마감하는 기간도 있으니 열심히 제작하게 되는데 자비를 들여 제작하면 완성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서로 품앗이하며 제작하던 분위기도 많이 없어진 것 같고. 요즘 들어서는스탭들 급여를 어떻게 책정해야할지 고민을 하기도 한다. 친분은 친분이고 돈은 돈이니까. (웃음)
디지털 영화 시대에서는 (필름과 달리) 아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장면이 많이 나오기도 한다. 일단 현장 가서 많이 찍어두고 나중에 편집하자, 뭐 이런 식이다. 이에 반대를 하면 현장을 이해 못한다는 평도 나오고.
이은선 : 또 요즘 단편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 생존을 테마로 한 영화가 많다.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본질적인 내용을 위주로 다룬다.
모은영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해마다 많은 작품들이 출품되는데 약 1000편의 영화 중 아쉬운 작품들이 꽤 보인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장편으로 다룰 이야기와 단편으로 만들 이야기를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또 장편으로 데뷔를 하기 위해 단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의심되는 작품도 많이 보여 아쉽다. 예전엔 완성도만으로 영화를 평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상향평준화되어서 그것만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다. 결국은 창작자의 고민이 필요하고 그런 작품에 관객들의 마음이 끌린다. 창작자의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이 나온다면 그 이후에 기회가 생길 것이고 작가와 감독으로서 완성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은선 : 어떤 작품이 히트를 치면, 그와 비슷한 소재가 우후죽순 나오는 경향도 있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들>을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웃음) 유행하는 소재를 다루는 게 옳은 선택인가 싶다.
패널들의 열띤 대화로 이번 시네마토크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단편에 대한 애정만으로 시네마 토크를 찾은 관객들도 진지하게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평소 궁금했던 화두들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편 영화’라는 한 주제만을 가지고 연출, 배급 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