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속 ‘여성’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MeToo(미투)운동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화계 내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남성 감독과 배우들이 가득했던 영화계에 여성 감독이 만든 작품, 메인 캐릭터가 여성인 작품들이 점점 등장했고 성 평등 가치, 여성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듯 올해 2018 AISFF에서도 예년에 비해 여성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여럿 출품되었는데, 이번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영화 다섯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1. <그녀를 보아줘 Would You Look at Her >
Goran Stolevski 고란 스톨레프스키 | Macedonia | 2017 | 19′ | Color | 국제경쟁3
#페미니스트 #종교 #퀴어
남자아이 같은 소녀, 말괄량이를 일컫는 단어 ‘tomboy’로 정의되는 주인공 아네타. 또래 남자아이들은 친구 리웁카와 아네타의 사이를 의심하며 두 사람을 레즈비언이라고 놀리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소녀의 사이가 틀어진다. 또래들의 괴롭힘은 계속되고, 이에 아네타는 마을의 신부를 설득해 교회 전통 의식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가장은 남자만이 할 수 있다’, ‘너는 엄마가 될 몸이니 찬 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한다’는 신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결국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하게 승리해낸다. 교회의 영향력이 큰 마케도니아에서 제작 지원금을 받기위해 코믹스러운 상황(신부님이 십자가를 놓치는 장면)으로 교회 의식에 대해 비판했다는 점이 재밌다.
영화는 두 소녀의 관계가 우정인지 사랑인지 굳이 단정 짓지 않는다. 또 아네타를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평범한 아이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따뜻한 작품이다.
2. <컷 Cut>
에바 시귀레에르도 티르 | United Kingdom, Iceland | 2017 | 18′ 31” | Color | 국제경쟁7
#리벤지포르노
최근 모 연예인의 전 남자친구가 과거 두 사람이 사귀었을 적 사생활 영상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사실이 밝혀지고, 이를 강력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계속해서 ‘리벤지 포르노’(비동의 유포 음란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닌 것인지, 이번 AISFF에서도 이를 소재로 한 해외 단편이 경쟁부문에 올랐다.
클로이는 전남자친구가 유포한 영상이 퍼져 ‘헤픈 여자’라는 낙인이 붙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들은 클로이를 조롱하며 치근덕거리고, 그녀의 몸 하나하나를 평가하기 바쁘다. 이에 클로이는 성적으로만 소비되어온 자신의 신체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건강함을 보여주려 피트니스 대회에 참가하지만, 그 안에서도 차별은 계속되어온다. 믿어왔던 트레이너조차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자 클로이는 비키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직접 포르노를 촬영한다. 이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결말은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다. 과연 클로이의 마지막 선택은 무슨 의미였을까? 차별과 편견에 무기력해져 사람들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신체결정권은 스스로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모습일지 각자 느낀 바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다. ‘리벤지포르노’의 폭력성과 그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좋은 단편이다.
3. <성인식 Coming of Age>
오정민 | Korea | 2018 | 27′ 04″ | Color | 국내경쟁1
#모녀 #엄마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낙담한 백설의 앞에 엄마 해숙이 찾아와 느닷없이 혼자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고 선언한다. 또한 앞으로 월세,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을 일절 끊을 것이니 각자의 길을 가자고 냉담하게 이야기한다. 아직 경제적 독립은 물론이고 집 청소처럼 사소한 일도 제대로 못하는 백설은 이 상황이 어이가 없을 뿐이다.
2~30대 관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의존과 독립이라는 문제 앞에서 허탈함을 느끼다가도, 영화 속 소소한 코미디 요소 때문에 ‘웃프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작품이다. 뼈아픈 성인식을 치르며 진정한 성인이 되어갈 백설, 기존 영화들과 차별화된 어머니 캐릭터를 보여준 매력적인 해숙.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다. 엄마의 (가짜)사망 소식보다 유서의 ‘전 재산 기부’ 문구에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딸과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민드 유어 온 부지네스’(mind your own business)라는 엄마의 대사처럼 각자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길, 두 여자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본다.
4. <The Wind Rises 바람이 분다>
홍유정 | Korea | 2015 | 16′ 30″ | B&W | 인디pick!
#여성폭력 #트라우마
영화는 덕희가 남학교에서 근무하던 ‘과거’의 모습과 보습학원에 첫 출강한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1년 전 남학생들은 힘으로 덕희를 제압하고, 그녀의 면전에 대고 욕을 할 만큼 무시해왔다. 이는 덕희를 극단적인 행동에 이르게 만들었고, 그 사건은 트라우마가 되어 계속해 그녀에게 영향을 미쳐온다.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시점’을 다루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관객들은 주인공 덕희의 입장이 되어 그녀가 상처를 극복하길 바라며, 이를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확장해 사고하게 된다. 흑백 화면과 이따금 들려오는 매미소리, 뿌옇게 초점 나간 몇몇 장면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바람이 분다’는 제목처럼 영화의 마지막 컷에서는 덕희가 창문을 열고 잔잔한 바람을 맞는데, 점점 줌 아웃되는 이 화면 안에서 ‘허들 넘는 사람’의 그림이 건물에 그려져 있다. 그 그림처럼 덕희가 자신의 앞에 놓인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기를 바라본다.
5. <An Algorithm 어떤 알고리즘>
민미홍 | Korea | 2017 | 39′ 56″ | Color | Fiction | 인디pick!
#퀴어
지원은 동성애에 대해 무지하지만 작품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려고 한다. 연극의 주인공 윤정은 지원이 동성애를 제대로 이해 못했다며 비난하고 지원은 자존심이 상한다. 이에 윤정의 옛 애인인 민아를 찾아가 그녀의 낱낱을 철저히 인터뷰하며 연극 대본을 수정해나가고, 그녀와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되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작품을 위해 민아를 이용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 연극으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상도 수상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지원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 깊다.
“둘 중 누가 남자야?”, “그럼 넌 왜 머리가 짧아?”와 같은 인터뷰 물음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잘 꼬집어주어 재미도 있다. 지원 역의 전소니 배우, 민아 역의 이주영 배우의 섬세한 감정 연기로 더욱 몰입감이 높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