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가운 딸
트리트먼트
딸은 먹다 남은 케이크를 R의 입에 꾸기듯 넣는다. R의 흰옷에 더럽게 케이크들이 떨어진다. 딸이 주변에 엄마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방으로 무심하게 들어가자 R이 괴로워한다. 다음 날, 엄마가 생일파티를 해도 되냐는 딸의 질문을 흘려들으며 R을 걸레로 닦는다. 흐트러진 곰 모양, 꽃 핀을 다시 꽂아준 후 자리에 앉는다. 딸은 갖가지 음식을 씹는 엄마의 모습이 혐오스러운지 수저를 내려놓고 학교로 간다. 엄마도 질린 듯 일어나 남은 음식들을 R의 입에 갖다 댄다. R은 힘들어 보이지만 엄마는 계속 음식을 건넨다. 이내 R의 볼을 움켜잡고 음식을 갖다 대며 더 입을 벌리라는 듯 대신 아아 입을 벌린다. 엄마의 얼굴에 푸른색 조명이 가득하다. R이 음식을 뿜자 다시 걸레를 가져와 R의 얼굴을 박박 닦는다.
늦은 오후, 딸의 생일파티에 많은 음식과 물건이 배달되고 딸과 딸의 친구들이 포장된 박스를 연신 뜯는다. 무지개 빛 종이가루가 흩날리며 신나는 노래와 함께 파티가 시작되었다. 노래가 갑작스럽게 끊기며 여러 손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을 R에게 던진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불이 꺼진다. 잠시 후 R을 비추는 파란 불빛만이 지지직거리며 켜진다. R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음식을 우적우적 씹는다. 엄마가 백화점에서 장을 보고 돌아와 형광 불을 켜자 R은 입 속에 들어있던 무지갯빛 종이가루를 토하듯 뿜어낸다. 음식을 잔뜩 사 온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문이 다 열린 상태로 많은 음식물이 쏟아지는 곰, 꽃 모양 자석이 붙어 있는 하얀 냉장고가 있다. 냉장고 안에서 파란 불빛이 흘러나온다. 왼손에 들린 엄마의 비닐 장바구니가 찢어지며 음식이 쏟아진다. 냉장고와 당황한 표정의 엄마만이 있을 뿐이다. 과일 하나가 정적 속에서 굴러 떨어진다.
모습을 지켜보는 냉장고, 가방을 메고 딸은 학교에 간다. 엄마도 음식을 먹다가 질린 듯 수저를 내려놓는다. 엄마가 꽉 찬 냉장고 안에 음식을 억지로 넣는다. 엄마의 얼굴에는 파란 조명이 묻어 있다.
캐스팅 희망 – 등장인물 소개
엄마 (여/30대 후반~40대 초중반)
잔소리와 짜증이 잦다. 그만 먹고 싶다. 부족하지 않은 집안. 입이 짧지만 음식을 계속 사고 주문한다. 마른 체구에 큰 키를 가지고 있다.
딸 (여/고등학생)
편식이 심하다. 엄마를 닮았고 깡말랐다. 똑같이 입이 짧지만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먹고 싶으면 다 사 먹고 냉장고, 냉동고에 넣으면 그만 아닌가?’
R (여/중.고등학생, 배역 ‘딸’보다 어린 느낌)
냉장고의 의인화. 통통한 느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옷만 입는다. 말이 없다. 왼쪽에 곰 모양과 꽃 핀을 꽂고 있다(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같은 것들).